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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첫 일정은 파리 근교(?)에 있는 누와용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이었다. 이 여행은 파리에 거주하시는 선배님의 도움을 받았다. 권현익 선교사님은 이날 우리를 위해 친히 운전과 가이드, 해설사 역할을 모두 담당해주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파리에서 1시간 조금 더 걸린다. 과거엔 1시간으로 충분했는데 요즘 교통량이 늘어서 더 걸린다고 한다. 중간 갈림길에서 잘 보고 꺾자.
조용하고 평온한 시골(?)마을 느낌의 누와용.
이곳에 온 이유는 칼뱅 생가로 알려진 건물에 꾸며진 "종교개혁 박물관"에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취재를 위해 미리 박물관측에 메일로 양해를 구했다. 사진을 찍고 출판에 사용하는 허락을 받았고, 출간 뒤 2권을 증정하기로 약속했다.
이 건물이 칼뱅 생가인 것은 사실 100% 확실하진 않다. 독일 연구자들이 전쟁 전의 여러 기록들과 사진을 토대로 추정한 위치라고 한다.
사실 우리에게 프랑스 종교개혁사가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다. 배경이 되는 중요한 인물과 사건들이 있는데, 우리는 덜렁 칼뱅 한 사람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러나 저 칼뱅이 나오기까지, 위그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권현익 선교사님이 그 일을 준비중이다.

위그노 종교개혁 지도자들과 그 후원자들에 대한 정보를 개략적으로라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곳은 종교개혁 박물관 혹은 위그노 박물관이지만, 아무래도 칼뱅 생가라서, 칼뱅과 직접 관련된 전시물이 한쪽에 모여있다.
위그노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알아야 할 주요 인물들이, 중요한 한 사건에 대거 등장한다. 이들에 대해서만 잘 알아도 위그노에 대한 정말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주요 종교개혁자들이 식탁에 둘러 앉은 모습을 그린 교육용 상상화. 가운데 두 사람이 루터와 칼뱅이다. 개혁파의 인물화나 동상의 특징은, 한 손가락을 항상 성경책 사이에 끼우고 있다는 점! 언제나 어느 순간에든 필요하면 성경을 인용하며 논박했던 그들의 특징을 잡아낸 것이리라.
위그노 예배당의 특징. 예배당은 성당이 아니다. 말씀을 선포하고/듣고, 성찬을 베풀고/받는 곳이다. 그래서 이렇게 실용적으로 설계되었다. 중세 고딕 양식이나 바로크 건축물이 담고 있는 중세 가톨릭 신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두 돌판 그림과 시편찬송가는 종교개혁자들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하나님의 법과 말씀의 최고 가치를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의 특징을 이런 그림과 판화로 묘사했다. 판화의 그림은 버전마다 조금씩 다른데, 성경 하나의 무게가 다른 모든 유물들과 사제, 그들을 지원하는 세속 권력들의 상징물, 열쇠, 홀, 심지어 사탄까지 메달린 것보다 무겁다는 콘셉트는, 모든 버전이 대동소이하다.
참 감동이 되는 그림이다. 위그노들은 자유롭게 말씀을 듣기 위해 머나먼 들판, 광야까지 나가야 했다. 그래서 저렇게 이동식 강대상을 만들었다. 바위 꼭대기에 우산을 쓰고 망을 보는 사람이 보인다. 그가 우산을 접으면, 추적자가 나타났다는 뜻으로, 모두가 흩어져야 했다... 그들은 그렇게라도 모여서 말씀을 듣고자 했다.
많은 위그노들이 갤리선 노잡이로 끌려갔다. 노잡이는 원래 자유민들이며 합당한 댓가를 받는 직업인이었는데, 그곳에서 위그노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했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녹스도 한동안 갤리선에서 지내야 했다고 한다.
평소에 커튼으로 가려둔 희귀본 그림이다. 올바른 복음이 제시하는 심플한 구원의 길과, 로마 가톨릭이 제시하는 복잡하고 오래 걸리며 결국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그릇된 구원의 길을 대조해서 보여주는 목적으로 그려진 테이블이다. 일종의 교육도구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누와용 대성당으로 가보자. 칼뱅이 어렸을 때 다녔을 곳이다.
외관은 여느 프랑스 성당들처럼 그로테스크하게 생겼다. 무섭게 생긴 가고일(Gargoyle)이 빗물받이 역할을 하며 평소에 주민들을 노려본다.
성당 동쪽 방향으로 돌아가니 아주 오래된 목조건물(도서관으로 사용되었다는)이 부속실로 붙어있다. 500년은 족히 되어 보인다.
내부 입장. 규모가 꽤 크다.
소원을 비는 촛불이 입구에 여러 개 켜져있다. 이것은 프로모션(?)용으로 켜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따가 설명...
채플실마다 사연이 많이 있어보인다. 바오로 2세의 사진도 보인다.
옷감에 예수 얼굴이 나타났다는 기적(?)의 성물인데, 중세 교회가 퍼뜨린 다른 사기들에 비하면 비교적 귀여운 편에 속한다. 이게 진짜냐 아니냐로 탄소연대측정에 방사선 분석 기법까지 동원된 유명한 물건이다.
채플실마다 특색이 있고, 어떤 방에는 초를 피워두었는데, 초가 굉장히 길다. 초에 불을 붙여두는 것이 "기도"를 의미한다. 초가 길면 오래 켜둘 수 있으니 기도를 "많이" 하게 되는 셈... 초의 길이에 비례해서 가격표가 다른 점에서 실소가 터졌다.ㅋㅋㅋ
건물 동쪽으로 가봤다. 리모델링 덕분에 밝고 깨끗했다.
유골함이 보이고.. 뼈도 하나 놓아두었다. 물론 저게 누구 뼈인지, 무슨 뼈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방문한 유명인들의 명단이 적혀있었다. 재미있게도 칼뱅의 이름도 있다. ㅎㅎㅎ 종교개혁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성당을 나와서 광장에서 잠시 쉬었다. 날씨가 좋고, 사람들은 큰길 쪽에 나와서 차를 마신다. 우리도 한 잔 했다.
Rue Calvin. 칼뱅로. 이 길을 따라가면 (실제로는 차로 이동했음) 제랄드 꼬뱅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아래)
칼뱅의 할아버지가 거주했던 마을이라고 한다.

 

위그노 전문가의 해설과 안내 덕분에 무려 칼뱅의 할아버지의 흔적까지 추적하면서 누와용 답사를 풍성하게 할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빌어 다시금 권현익 선교사님께 감사드린다.

※ 관련하여, 누와용에 대해 기고했던 글을 링크한다.

 

칼뱅의 생가가 있는 누아용 - mytwelve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 현대의 누아용은 작은 마을이다. 필자가 이곳에 취재차 갔을 때는 당시 파리에 거주하며 연구 중이던 위그노 전문가 ‘권현익 선교사’의 도움을 크게 받았음을 미리 밝힌다. 누아용 ...

www.mytwelve.co.kr

 

이제 다음 코스는 욱스깡 수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