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가 법률을 공부했던 대학, 사제가 되겠다고 정식으로 서원한 곳, 수도사 생활을 했던 어거스틴 수도원, 사제 서품을 받은 대성당, 첫 미사를 집전했던 곳 등이 모두 이곳 에어푸르트(에르푸르트)에 있다. 이곳에서 철저한 수도사로 살았던 루터가 언제부터 종교개혁의 씨앗을 잉태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된 도시이므로, 동선만 맞는다면 들러갈 수 있겠다. 하지만 몇 안 되는 종교개혁지 탐방 코스에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보인다.
에르푸르트 북쪽에 있는 벌판으로 갔다. 이곳에 온 이유는,
다시 차를 달려, "예나"라는 도시에 도착...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한 설명이 필요한데, 언젠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로 대신한다. ^^
독일엔 예나(jena)라는 도시가 있다. 종교개혁지 답사 코스의 중간에 위치한 작은 이 도시는 올해의 주인공 "루터"와 관련이 있다. 루터가 황제와 가톨릭으로부터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신원을 감추고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지내던 시절, 그때 루터는 우리가 상상하듯 성 안에만 짱박혀 지냈던 것은 아니었다. 상당히 특이한(눈에 띄는)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주변을 얼쩡거리기도 했고, 심지어 (등잔 밑이 어둡다고) 비텐베르크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오가는 길이 안전할 수 없었기에 루터는 신뢰할만한 숙소가 필요했고, 그래서 그가 단골로 들러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했던 곳이 예나에 있는 "흑곰" 여인숙이었다.
흑곰 여인숙에 얽힌 재미나는 이야기도 있다. 비텐베르크에 루터가 뜬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가다가 우연찮게 예나에서 머무르게 되었던 어느 교수와 수행원(학생)이, 마침 거기 머물던 변장한 루터를 만났으나 못 알아본 사건이다. 루터는 그들에게 신원을 감춘 채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짖굳게도 "루터"에 대해 들어봤냐며 은근히 떠봤던 것이다. 바르트부르크에 숨어 지내면서 자신이 세상에 얼마나 엄청난 일을 했는지 자못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고, 이제 곧 비텐베르크에 가야 할텐데, 청중이 얼마나 호의적인지도 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교수와 학생이 입에 침이 마르게 루터라는 인물을 칭찬했음은 물론이고, 아마 루터는 그날 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꿀잠을 잤을 것이다.
이것은 원래 특종이에 넣으려 했던 스토리인데, 출판사 사장님이 루터 이야기는 4쪽으로 끝내라 하셔서 삭제되었다. 종교개혁사 책을 쓰면서 루터 이야기를 4쪽으로 끝내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황당하다. 아무튼 지금 그 여인숙 자리는 4성급 호텔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들의 "오랜 역사"를 홍보하고 있다. (호텔 가격은 촘 비싼 편이라 추천은 못하겠다.)"흑곰북스"라는 묘한(?) 이름으로 우리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분들이 그 정체와 유래를 궁금해 하셨다. 이 이름은 책날개에 적어둔 것처럼 칼뱅의 "기독교 강요" 초판을 찍어냈던 인쇄소 간판(흑곰 문양)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몇몇 분들은 곧바로 이 예나의 흑곰 여인숙을 떠올리셨다. 물론 그걸 떠올릴 정도의 분들이라면 보통 분들은 아니시라는 것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언젠가, 여기를 꼭 가보고 싶다. [황희상] 2017년 3월 11일
이런 사연으로, 원래 일정표에 없던 "예나"였지만, 가이드를 졸라서 약간의 추가비용을 지불하고(운전기사 팁) 들러볼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곳이라 실제로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만의 사심으로 전체 일행을 끌고 가는 부담감과 두려움에 떨며 방문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그 호텔은 루터의 흔적을 약소하나마 기념하고 있었다.
다시 이동해서 방문한 곳은 아이슬레벤. 루터가 태어난 집, 루터가 사망한 집, 루터가 마지막 설교를 했던 교회당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아무래도 루터 생가가 있는 마을이라, 아주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열심히 해두었다.
저녁엔 다음 도시 비텐베르크로 이동하기 위해 최대한 이동해서 일단 데사우라는 동네에서 숙박했다.
여길 또 언제 와 보겠나... 피곤하지만 밖으로 나가서 데사우의 야경도 사진에 담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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