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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에 모두투어에서 신박한 패키지 상품이 하나 떴었다. 아래 그림처럼, 중동/아프리카/유럽 3대륙을 찍는 기상천외한 상품이다. 이게 왜 신박한지는, 지금부터 하는 설명을 듣다 보면 슬슬 느낌이 올 것이다.

1. 두바이를 이길 수만 있다면 기름값 따위는 신경 안 쓰는 아부다비의 국영 항공사 에티하드를 이용해서("유류할증료? 그게 뭐야?") 일단 중동으로 날아간 뒤, 예의상 아부다비 한바퀴 돌아주고, 두바이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야경까지 보고, 곧바로 다시 비행기 타고 카사블랑카로 간다.

2. 카사블랑카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마라캐시라는 모로코 전통시장을 보고, 아틀라스 산맥을 구비구비 넘어가며 오래된 마을과 도시들, 기암괴석이 즐비한 협곡들을 지나간다.

3. 사하라 사막 가장자리에 도착해서, 사막에 지어진 호텔에서 묵으며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 경험한다.

4. 다시 산맥을 넘어 모로코 전통 염색공장으로 유명한 페즈를 구경한다. 이어서 배를 타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의 다시스 근방의 항구로 입국한다.

5. 알함브라 궁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세고비아, 톨레도 등등, 스페인의 웬만한 코스는 다 돌아댕긴다. 물론, 11박 12일 모두 별 서너 개 호텔에서 자고, 식사도 잘 나온다.

6. 그리고 이 모든 것이 169만원... (응?) ... 이게 정확히 어찌된 상품인지는 모르겠는데, 추정을 하자면, 아마 아부다비 항공사에서 인천 취항하면서 좀 땡긴(?) 듯하고, 여행사가 덥석 물어서 현장 상황은 현지 가이드에게 죄다 떠넘기고 일단 초저가로 모객부터 해버린 듯하다. 지금도 유사한 코스의 상품은 있지만, 저런 가격으로는 없다.

7. 그리고 인터넷에 배너가 뜬 첫날, 내가 잽싸게 낚여줬다. ㅎㅎㅎ

후아... 일단 낚이긴 했는데... 이 여행, 이대로 괜찮은 걸까???

물론 단순히 가격이 싸서 결정한 것은 아니다. 그랬으면 동남아 갔겠지... 2017년에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며 강의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졌고, 이미 여름도 되기 전부터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버티고 버티던 어느 날(7월 중순쯤) 달력을 보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7~10월에 전국적으로 무려 45개의 강의가 잡혀있었는데, 숨이 콱 막히면서, 이러다가 내가 죽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 살기 위해 - 종교개혁기념일까지 보내고 바로 다음 주로 여행 일정을 덜컥 잡아버렸다. 한국을 뜨자! 기왕 가는 거, 머얼리~ 가자! 상상도 못할 곳으로 숨어버리자! 이렇게 생각하고 여행 장소를 물색했다. 떠난다면 어디로? 보통 이럴 때 "다시스"로 도망치지 않던가. ㅎㅎㅎ 그래서 저 일정표를 보고 마음이 확 동했다. 게다가 사하라 사막이라니!! 가격이 저렴한 것을 떠나서, 지금 내 상황에 꼭 맞는 여행이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아부다비에 있었다.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지만, 늘 두바이에 밀리고 뭘 해도 짝퉁 취급을 받아서 약이 바짝 올라있는 동네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개발사업을 하고는 있는데, 사람들은 지금 우리 일행처럼 이곳을 저렴한 공항으로 쓰고, 관광은 두바이로 달려간다.
열심히 짓고는 있는데, 아직 많이 휑하다. ^^;;;
귀찮은 관광객들이 왔다고 툴툴거리며 자리를 피하는 아부다비냥.
사진을 클릭해서 키우면 보이겠지만, 지금 저 건물 벽에는 청소부가 줄을 타고 있다. 본의아니게 아찔한 곡예를 라이브로 봤다...

 

차를 타고 2시간 쯤 달려서 두바이(دبي)에 도착했다. 두바이는 7성급 호텔과 종려나무 모양의 간척지(?), 그리고 세계지도 모양의 집단 인공섬을 바다에 만들고 분양해준다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유명한 동네여서, 나도 오래 전부터 한 번은 가봐야지 싶었는데 이렇게 얼떨결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

차창 밖으로 휘황찬란한 빌딩들이 즐비하다. 세계 최고층 빌딩도 보인다. 저기는 이따 저녁 때 야경을 보러 갔다.
두바이 국왕의 왕궁(Zabeel Palace)
고급 리무진들이 잔뜩 있다. 지극히 두바이스러운 광경이다. ㅎㅎ

 

두바이 크릭(Dubai Creek)

두바이 크릭(Dubai Creek)에 있는 시장에 가봤다. 금, 향신료로 유명.
크릭을 배를 타고 건넜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서, '통 모르겠는' 두바이...

 

공공 해변(Jumeirah Public Beach). 버즈 알 아랍(برج العرب)호텔이 있는 곳이다.

사촌동생이 신행 때 여기서 하루 묵었는데... 어메너티로 명품브랜드 샴푸/린스/로션 등이 쌓여있었다며(조그마한 샘플 사이즈가 아니라 두어 달은 쓸 수 있는 사이즈로!!!) 싹 긁어와서 나눠준 적이 있다. (나도 몇 개 받았ㅎㅎ)

 

 

여기서 일부는 수상보트를 타러 갔고, 우리 부부는 자유를 누릴 기회다 싶어서 스타벅스를 찾아갔다. 자유는 좋은 거시다. ㅋㅋ
패키지 여행 중 옵션투어가 있을 경우, 예의상 중요한 거 두어 개만 하고, 나머지는 웬만해서는 안 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정 하고 싶으면 직접 티켓 끊고 하면 반값도 안 든다. --;; 근데 사실 이런 말은 가이드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소리다. 그럴거면 자유여행 하지 머하러 패키지로 왔냐가 된다. 현지 가이드가 이걸로 먹고 살게 되어있는 여행업계의 구조 탓에, 이런 불합리가 생긴다. 대안은 패키지의 편리함과 자유여행의 자유로움을 반반 섞은 대안 상품이라고 보는데.. 뭐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니깐...

 

팜 주메이라(The Palm Jumeirah, نخلة جميرا)

팜 주메이라에는 버스로 들어갔다가 모노레일을 타고 나왔는데, 오후 늦게 들어가서 석양이 지는 시간에 나왔더니 경치가 멋졌다.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마다 지어진 리조트(?)를 멀리서 볼 수 있었는데, 생각처럼 막 엄청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사막 모래를 퍼다가 바다에 부어서 만든 곳이라, 자연이 만든 작품과는 비교 자체가 안되는 듯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녁을 먹고, 이제 세계 최고높이 빌딩,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 برج خليفة)를 보러 간다.
어차피 얼마 후에는 순위가 뒤바뀔 빌딩 따위... ㅎㅎㅎ 

...라고 생각했으나, 직접 보니 진짜 어마어마하긴 하다. ㅎㅎㅎ 목 꺾이는 줄..  (높이 829.8미터 ㄷㄷㄷ)

이곳은 분수쇼를 보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와 있으나, 그닥 신기하지도 않고 뭐 그저 그래서.. 화장실 가는 시간으로 활용...
하늘을 찌를려구 노력하는 '바늘' 같다.
우연히 찍은 사진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비닐봉다리를 들고 걸어가고 계셨다. ㄷㄷㄷㄷ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나의 중동 방문은 이렇게 하루를 꼬박 보내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이제 '그 흑백 영화의 도시' 카사블랑카로 날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