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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욘 데라플라나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에 바르셀로나로 출발한 버스는 계속해서 지중해변을 따라 달린다. 경치가 끝내준다.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까지는 어마어마하게 먼 거리다. 안 쉬고 달려도 차로 8시간인데, 쉬는 시간, 밥 시간, 교통상황 고려하면 최소 10시간 짜리 대장정이다. 이걸 한번에 다 이동하려고 시도하면 패키지 관광객들의 원성이 자자할 것. 따라서 코스를 짜는 사람의 해결책은 일단 최대한 열심히 달려서 잘 먹이고 잘 재우고, 다음 날 아침에 뭔가를 하고 또 열심히 달려서 바르셀로나 오후 일정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까지 버스만 탔다는 기억보다는, 그라나다에서 뭔가를 하러 절반쯤 이동했고, 다시 바르셀로나까지 조금 더 갔다는 기억이 남는다. 조삼모사랄까. ㅎㅎㅎ

바로 그 뭔가를 한 곳이 이곳 페니스콜라이다.

 

작은 해안가 마을에 언덕이 있고, 언덕 위에는 오래된 성이 있다. (Peniscola Castle)

 

 

이곳은 그냥 지중해의 예쁜 마을이라고  알고 지나가도 무방하다. ㅎㅎㅎ 그런데 앞의 글에서 기왕에 레콩키스타 이야기를 했으니, 영화 "엘 시드"의 배경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엘 시드(El Cid)'는 그 뒤숭숭하던 시절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다. 본명은 로드리고 뭐 어쩌고인데.. 중요하지 않고.. 여튼 이 동네 뿐만 아니라 스페인 전역에서 활동했던 귀족이자, 군벌이자, 점령자이자, 풍운아로서, 아랍인과 기독교인 양쪽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민중의 사랑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챨턴 헤스턴('벤 허'의 주인공), 소피아 로렌 주연 작으로, 재미는 있으나, 무척 길다. ㅋㅋㅋ 오랜 시간을 달려야 했던 버스에서도 이 영화를 열심히 틀어줬는데, 바로 이곳에 들르기 위함이었다. ^^

해변에 주차하고 30분 줄 동안 가볍게 산책하고 오라고 했다. 앞에서 말한 "뭔가를 하기"가 바로 이것이다. 절반쯤은 그냥 귀찮아서 버스에 앉아 구경하는데, 나는 웬만하면 엘 시드의 성 문 앞까지는 가보려고 열심히 구도심으로 달렸다.

 

 

근데 가는 곳마다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이 동네 진짜 예쁘다. 

 

지중해를 비치는 강렬한 태양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빛에 젖어 살아가는 이 마을도 그렇게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겠지 싶다.

 

요렇게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바람이 파도의 끝자락을 안개로 만들어 공기 중에 훌쩍 날려준다... 와.. 그 순간, 완전히 반해버렸다. ㅠㅠ
언젠가 나는 이 지극히 서정적인 동네에 와서 인터넷 꺼놓고 2~3주쯤 살면서 지중해를 노작노작~ 마음껏 즐기고 싶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

 

페니스콜라를 떠나서 조금 더 달려, 우리는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참고로 이 시기에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자체 투표를 강행하던 기간이었고 스페인 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하는 등 정치적으로 좀 불안정한 시국이었다. 덕분에 바르셀로나 근처에 예약했던 호텔이 갑자기 바뀌는 등, 약간의 어수선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