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에 도착했다. 스페인의 정치적 수도가 마드리드이고 경제적 수도가 바르셀로나라면, 톨레도는 스페인의 정신적 수도라고 할 수 있겠다. 교권이 세속권력보다 강하던 중세에는 이렇게 주교좌 성당이 있는 곳이 짱이다. 그 중에서도 톨레도는 스페인 가톨릭의 정수와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 와야 진짜 스페인을 만난다고들 해서, 나 혼자 여행 계획을 짤 때도 마드리드는 공항용(?)이었고, 톨레도에서 숙박을 하는 코스를 잡았었다. 그러나 패키지로 오게 되어서, 숙박은커녕, 오후에 잠깐 만나고 가게 되었다. 그래도 최대한 많이 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톨레도 역시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관광객이 구도심에 입장하는 곳에는 주차장과 에스컬레이터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구글어스 캡쳐로 본 톨레도는 대략 이렇게 생겼다. 구도심 성곽과 성문 등이 별도로 있지만, 관광객은 아래 오른쪽에서부터 입장해서 에스컬레이터로 단숨에 성벽 위까지 올라간다. 가운데 가장 큰 건물이 톨레도의 알카사르이고, 오른쪽에 첨탑이 있는 건물이 톨레도 주교좌 대성당이다.
골목길을 따라 걸어다니며 톨레도를 만났다. ^^
한참 걷는데 워낙 골목이 복잡하고 좁아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근데, 이런 동네 완전 좋다.ㅋㅋ 모로코 페스에서도 비슷했지만, 거긴 좀 우범지대 같았고 누가 자꾸 따라와서 신경이 쓰였다면, 이곳은 깔끔하고 안전한 느낌을 주는 구시가라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걸었던 길을 위성지도상에 대략의 동선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물론 중간중간 샛길로 무쟈게 많이 접어들었고, 특히 쇼핑을 한다고(치약과 식용류 ㅋㅋ) 싸돌아다닌 골목은 어디가 어딘지 복기가 불가능하다. ㅎㅎㅎ
톨레도 대성당에 입장했다. 들어선 순간 감탄이 나온다.
유럽 곳곳을 다니며 웬만한 대성당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스페인의 대성당은 그 레베루가 달랐다. 화려함의 극치랄까!!?
이래서 중세 교회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스페인에 가봐야 한다고들 했꾸나 싶다.
휘황찬란. 그저 이 단어가 딱이다.
기가 질릴 정도로 화려하다.. 이 예산이 다 어디서 거두어졌을까 생각하다 보면, 결국 스페인 제국의 역사와 맞물리는, 거대담론이 된다.
이런 디테일까지 ㅎㅎㅎ 몇 년도 작품일까 궁금해졌다.
대부분의 공간 구획이 제단과 성가대와 채플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성당이 누구를 위한 공간이었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쯤 되니 눈이 어지럽고, 카메라 초점도 잘 안 맞는다. 후지 X100s 너도 지쳤구나.. 고만 보고 나가자...
라고 했지만 아직도 볼 것이 넘쳐난다.
천장을 뚫어버리는 발상의 전환으로
실내장식에 자연 채광 스포트라이트 효과를 주고 있다. ㄷㄷㄷ
뭔가 고오급스러운 실내 장식에 이끌려 들어간 방인데, 놀랍게도 이슬람 양식과 가톨릭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이런 것이 또 스페인 가톨릭의 특징이자 매력 아닐까 싶다. 오른쪽 사진은 역대 교황 인물화가 붙어있는 방이다.
내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스페인의 가톨릭은 '로마 가톨릭'이 아니라 '톨레도 가톨릭'이었다!
대성당 하나를 봤을 뿐인데, 정보량이 넘치다 못해 포화상태가 되어, 밖으로 나와서 광장에서 숨을 돌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광장 동서남북.
대성당을 뒤로하고 골목길을 걸었다.
라만차 지방의 톨레도는 동끼호떼의 동네이다. 여기저기 동끼호떼의 향기(?)가 느껴진다.
어렸을 때 동끼호떼(동+끼호떼) 완역판을 읽고 크게 감명받았던 기억이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요약판이나 영상 미디어를 위한 개작에서는 동끼호떼를 단순무식하게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그저 미친 놈으로 그리고 있지만, 사실 그는 시대를 쓰루하는 진리를 거침없이 설파하는 예언자이자 선지자다. 그리고 이 소설은 레전드와 전설을 합쳐놓은 정도의 훌륭한 인류 유산이다. 게다가 시종일관 동 끼호떼의 언행을 까대는 시종 산초의 대사 속에는 섬뜩할 정도의 지혜와 묵직하게 가슴을 누르는 사랑이 담겨있다. (게다가 그토록 짜릿한 쾌감을 주는 머리말이라니!) ... 이번에 스페인 라만차에서 만난 동 끼호떼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몽글거리게 만들었다. 사십 넘어서 만난 끼호떼는 또 어떤 영감님일까 궁금해진 나는 돌아와서 곧바로 동끼호떼 완역판을 읽어버렸다. ^^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짧은 시간애 톨레도를 보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지만, 어쨌든 정해진 일정 속에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봤다.
여기서 시간이 더 있으면 투어용 기차를 타고 외곽으로 한바퀴 돌거나, 알카사르(현재 군사박물관으로 사용)에도 들어가보면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동 끼호떼에 관심이 많은데, 찾아보면 아마 그와 관련된 무슨 박물관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을 더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여행은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런 게 또 여행의 한 측면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