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난다. 딱히 통계를 내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다른 대부분 여행객들의 소지품 중에는 카메라 하나쯤 필수품으로 끼어있을 것이다. 여행객들은 여행의 현장에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눈으로 보는 그곳의 '현재'를 필름에 담는다. 그리고 돌아와서 사진을 뽑아보면서, 셔터를 누를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그 장소의 '현재'를 떠올린다. 이때 사진 속의 장면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지만, '과거'는 사진 속에서 '현재'가 되어 다가온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여행지의 '현재'를 내 나름대로 잡아보기 위해 카메라를 챙겼다.
카메라는 순간을 영원토록 간직하는 도구이다. 카메라 속에서 모든 시간은 정지하며, 우리는 '미래'에도 '과거'를 '현재'로 삼을 수 있다. 그래서 여행자는 늘 카메라를 들고, 다른 장소, 더 멀리는 다른 대륙, 다른 문화의 다른 인종들과, 그들만의 건축물, 생활 습성, 그들이 즐기는 음식, 그들이 풍기는 냄새, 그들이 사랑하는 것, 혹은 그들이 배척하는 것들을 만나러 간다. 이번에 뜻하지 못한 기회로 유럽 5개국 여행을 떠나게 된 나는, 표면적으론 2003년 8월의 그들을 만나러 가는 셈이지만,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만나는 것은 꼭 2003년의 그들이 아닐 수 있다. 카메라가 과거를 현재화 시켜 미래에 전해주듯, 여행지에 남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들의 현재뿐 아니라 그 현재를 있게 한 과거를 함께 품고 있다. 이번에 찾아가는 터키 이스탄불, 이즈미르, 그리고 그리스의 고린도와 아테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의 도시들과 자연은, 수백 수천 해의 역사를 통해 인류에게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던 매력적인 '장소'다.
'현재'는 '미래'에는 지나가 버린 '과거'이지만, '과거'는 '미래'에도 여전히 '과거'로 남아있다. 역사 속에 한 순간 존재한 '과거'는, 그 시대 각각의 '현재'를 묵묵히 증거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의 '현재'와 함께 그들의 '과거'도 만날 참이다. 이를 위해 나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꽤 오랜 시간 역사책에 매달렸고, 앞으로도 매달릴 작정이다. 최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시대를 살피고, 이들의 역사가 서로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특히 집중해서 보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이들의 과거를 현재 속에 떠올리고 비교하는 데 상당한 정신을 쏟을 예정이다.
그러나 여행에서 내가 만나는 것은 그들의 '현재'와 '과거' 말고도 또 있다. 시간은 계속 흐르지만, 그 역사가 펼쳐진 장소는 그 자리에 지워지지 않고 서있다. 이것은 반복적이며 늘 누적되는 성격이다. '중첩 시제'의 '과거'인 셈이다. 한 장소에, 시간의 변화에 따라 수많은 역사가 발자취를 남겼고, 그래서 하나의 장소는 여러 개의 '과거'들을 함께 증거하고 있다. 즉,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사의 복합적인 역사의 산물을, 나는 그 장소에서 한꺼번에 보는 것이다. 역사가 언제, 왜, 어떻게, 무엇에 의하여 무엇에 어떤 영향을 주며,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통합적으로 알게 될 때의 즐거움은 장난 아니게 크다. 여행을 통해 나에게 주어지는 그 장소는, 지나간 역사를 보다 총체적으로, 제대로 배우는 시금석이 된다.
물론 이를 찾아내고 깨닫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잘 배울 수만 있다면, '지금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대답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늘의 내가, 미래와 과거를 통틀어 지금 내가 여행하는 이 장소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야 하며, 그 장소는 또한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생각의 무대는 세계를 아우르게 된다. 내 머리가 나아가야 할 곳까지 나아가고 내 시야가 다가가야 할 곳까지 다가가게 만드는 것은, 여행을 통해 - 카메라를 들고 가든, 들고 가지 않든 간에 - 직접 느낄 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이런 방식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가치를 준다. 학교에서는, 세계의 역사를 '왕'들이, 사회 지배 구조나 정치적 세력이 이끌어간다고 가르친다. 동로마 교회와 서로마 교회의 분리를, 교황들의 세력 싸움의 결과로 본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세력을 얻는 이유를, 교황에게 반감을 가진 지방 귀족들의 도움에서 찾는다. 조금 발전된 역사 교육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이원복 교수의 인기 교육만화 '먼 나라 이웃나라'가 취하고 있는 역사 서술방식 역시 그 포커스를 국가 권력자에게 두고 있다. 즉, 왕권 혹은 교권, 정치적 지도자의 결단과 의지, 이에 대한 귀족들의 입장차이, 국제적 역학관계 등을 중심으로 온 나라의 역사를 서술하고 설명하려 한다. 시대의 변화도 왕권의 변화와 함께 오고, 역사 속의 모든 등장인물은 사회 국가적 큰 흐름 속에서 마치 잘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배우처럼 제 캐릭터가 선명하다. 그리고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여, 역사는 흐른다... 그러나, 이는 무척 좁은 시야이며, 상당히 재미 없는 전개라고 본다. 성경의 '열왕기'와 '역대기'는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기록한 책이지만, 서로 기록자의 관점이 선연하게 다르다.
즉, 역사를 바라볼 때 무엇보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그 장소에서 과거-현재-미래를 초월하여 시간의 개념 저편에서 한 눈에 내려보시며 역사의 현장을 섭리하시는 분의 '존재'이다. 그분이 베풀어두신 그것을 대하고, 그의 섭리를 되새기고 그분의 뜻을 보는 것이다. 지나가 버린 '과거'의 그들은 그들이 경험하는 '현재' 속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에 이끌리었으며, 그들을 섭리하신 이는 그들을 어디로 이끄셨는지, 그리고 그때 그 장소에서 그렇게 섭리하신 자가 오늘 우리를 어떻게 이끌고 계시며, 또한 우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시는지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역사는 저 혼자, 또는 인간의 의지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섭리하시는 자의 뜻에 따라 되는 것이며, 이는 우리와, 또한 오고 오는 세대들에게 그분이 주시려는 그 어떤 '계시'의 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그 계시를 받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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