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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내가 10년 전부터 머릿속으로 구상하던 도보 답사코스가 있다. 바로 로마의 아피아 가도 일부분을 실제 두 발로 걸어보는 것이다. 저번에 맥도날드 지하에 있는 아피아 가도를 밟아본 것만으로는 만족되지 않는다.

생각해본 코스는 이렇다. 로마 외곽 카타콤베에서부터 출발해서, 로마 도심 방향으로 아피아가도를 따라 걷다 보면 아우렐리아누스 방벽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인사(?)를 나누고, 바진입하지 않고 성벽을 따라 우측으로 돌다가, 사도 요한이 끓는 기름에 고초를 겪었으나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전승(썰)의 현장인 라틴 문(Porta Latina)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성벽 안쪽으로 진입해 공원길을 따라 걸으며 숨을 크게 쉬고, 다시 아피아 가도를 만나서 더 직진하면 이번에는 카라칼라 욕장을 만나게 되며, 거기서 더 전진하면 드디어 팔리티노 언덕 기슭의 키르쿠스 막시무스(대 경기장)을 만나게 된다.

로마에 두 번 갔어도 시간부족으로 패스하곤 했던.. 이 코스를, 이번 여행에서 3일에 걸쳐 다 걸어보았다. ^^

왼쪽부터, 1일차, 2일차, 3일차... 이 도보 답사 프로젝트를 위해서 딱 알맞은 위치에 숙소를 고른 것도 있다. ㅎㅎㅎ (클릭하면 사진이 커짐)
숙소 바로 옆 왕복 8차선 큰길을 걸으면 곧바로 보존지역 시작이다. (사실 보존지역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지도상으로 분명 그린 구역이다.)
구글맵을 보며 아피아 가도에 도착했더니 순례길 표시가 있다. 제대로 찾아왔다.
역사적 문화적 상징성에 비하면 너무 그냥 차가 다니는 일반 도로이다. 인도가 따로 없어서 주의하며 걸어야 한다.
이 사진에 보이는 구역은 그나마 인도가 넓은 편에 속한다..
반대쪽으로 쭉 가면 카타콤베(지하 무덤)가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며칠 뒤에 가볼 것이다.
한참 걷다보니 아우렐리아누스 방벽이 똭 나타난다. 이것이 고대 로마의 남쪽 성문 개념이다. (내부는 박물관으로 운영)

사실 로마는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직후 도시 방벽을 다 없앴다. 감히 누가 우리 로마를 침공하겠는가 해서, 과감하게 없앤 것이다. 그래서 로마는 고대의 몇 안 되는 '성벽 없는 대도시'였다. 그러던 것을, 나중에 게르만족의 위협이 예상되는 시기에, 예방 차원에서 다시 건설한 것이 바로 이 아우렐리아누스 방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는 아직 게르만족이 실제적인 위협을 하던 시기가 아니라서, 어쩌면 로마의 힘이 정점에 달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시 방벽 건설은 로마 도심 바로 둘레에 했던 게 아니라 이처럼 먼 외곽에 둘러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로마는 이 방벽에서 근무할 병사조차 로마인으로 조달(?)할 수 없어서 게르만족 용병을 썼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방벽의 의미가 전혀 없이, 내부로부터 무너졌다. 

기념 사진을 찍고...
계획대로 바로 성벽 내부로 진입하지 않고, 오른쪽 성벽을 따라 돌아간다.
두둥! 동쪽의 라틴 문. 요한 사도의 전승... 물론 끓는 기름에도 살아났다는 썰은 증거는 없지만, 수많은 기독교도가 고초를 당한 것은 사실이다.
라틴 문을 통해 성벽 내부로 진입. 시민 공원이 잘 마련되어 있다.
다시 아피아 가도 쪽으로 왔다. 그래도 성벽 내부는 교통량이 더 적어서 덜 위험하다.

아피아 가도가 방벽을 만나는 그 지점 살짝 안쪽에 있는 '드루수스 개선문(Arch of Drusus)'이다. 그런데 이 아치는 실제로는 개선문이 아니라 과거의 수로 시설 중 하나라고.... 아무튼 그 중요한 것이, 철조망은커녕 그 흔한 보호벽 하나도 없이 그냥 길 한 가운데 대충 보존(?)되어 있다. 로마 스타일이다. ㅎㅎㅎ

수많은 세월 속에서 무너지고, 파괴되고, 보수되고, 다시 부서지고...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아우렐리아누스 방벽.
방벽을 따라 걸으며 숙소 쪽으로 걷는데 아름다운 석양이 반겨준다.


다음 날. 이번에는 아침부터 아피아 가도를 걷는다.

다시 방벽 쪽으로 걸어와서
드루수스 개선문(?)과 인사를 나누고
성벽 내 아피아 가도를 따라 걷는다.
주위에 온통 고대-중세-근현대의 역사가 지층처럼 쌓이고 쌓여있다.
보존된 아피아 가도가 자연스럽게 끝나는 지점에, 거대한 고대 로마의 유적이 떡 버티고 있다. 바로 카라칼라 욕장.
지금으로 치면 리조트 시절이다. 정말 거대하다.
복원도는 이러한 모습이다. 실제로 운영될 때 정말 대단했을 것 같다.
내부 사진은 없다. 왜냐... 하필... 이 날이 쉬는 날이었다....

조금 더 걸으면 저 멀리 팔라티노 언덕이 보이고... (언덕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오늘날 보이는 것은 온통 고대 로마의 고층빌딩 잔해이다. 무려 5층 높이...) 그 기슭에 운동장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게 바로 고대 로마의 대 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이것은 라틴어로, 직역하면 "가장 큰 경기장" 정도가 된다. 키르쿠스는 영어식으로 하면 그대로 Circus가 되고, 막시무스는 Massive 정도가 될 듯하다. 여튼 지금은 그 흔적만 겨우 알아볼 수 있다.

* 옛 모습과 현재 모습 비교
대신에 여기서 바라보는 팔라티노는 상당히 멋있다.


또 다른 날, 우리 일행은 카타콤베에 가기 위해 또 다시 아피아 가도를 걸었다. 이번엔 북쪽에서 남쪽으로 걸었다.

카타콤베는 차를 타고 가도 되지만, 이렇게 아피아 가도를 걸어서 가는 것도 완전 추천한다. 역사 속을 걷는 듯한 그 느낌이 정말 짜릿하다!
카타콤베는 지하 무덤이긴 하지만 종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곳이라 지금은 해당 지역이 깨끗하게 잘 보존되고 있다.
들판 건너 저 멀리에 아우렐리아누스 방벽 일부와 남쪽 성문이 빼꼼히 보인다.
이곳은 가이드 투어만 가능하다. 입장료를 내고, 각자가 듣기 편한 언어를 택해서 해당 국기 앞에 줄을 서있다가 가이드가 오면 따라가면 된다.
입구에서 기본적인 설명과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들어간다.

이제 입장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사진이 없다. 왜냐.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ㅠㅠ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역시 기념품 가게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3일에 걸쳐, 아피아 가도 중에서 계획했던 구간을 다 걸어볼 수 있었다. 물론 그 3일간 이것만 한 것은 아니고 한번에 1~2시간밖에 안 걸렸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일정들을 계속 해 나갔다. 마음 먹으면 반나절에도 다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정이다.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되면 아피아 가도의 더 긴 코스도 걸어보고 싶다. 카타콤베 남쪽으로 쭉 보존구역이 있고, 가다보면 거대한 수도교를 만날 수도 있다. 이 길을 따라 새벽에 조깅하는 로마 시민들도 많다고 한다. 언젠가 그런 일이 나에게도 생기기를 슬그머니 소망하며... ㅎㅎㅎ

아피아 가도 특집편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