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를 떠나서 이제 어디로 가나. 차로 한 시간 조금 넘는 곳에 피사(Pisa)가 있다. "피사의 사탑"의 바로 그 피사. 미리 찾아둔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갔다.
사실 여기서 주차요금 기계가 돈을 안 먹어줘서 한참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동네 주민이 지나가면서 보더니 홀리데이라서 무료라고...;; 사실 앞의 글에서 따로 적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 내내 어쩐 일인지 주차요금 기계를 한 방에 제대로 작동시켜본 경험이 전혀 없다. 기계 종류는 천차만별에, 그나마 고장난 기계도 많고, 멀쩡해 보이는 놈은 꺼져있고... 어떤 놈은 카드가 안 되고 어떤 놈은 현금이 안 되고 어떤 놈은 돈을 계속 뱉어내고... 우리도 주차비를 내고 싶다고오!!! 쉽지 않아 쉽지 않아...
쭉 걸어가서 성문을 통과하여 성벽을 지나면
...
떡! 하니 피사의 사탑이 보인다. TV나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확 기울어져 있다.
위험해 보이는데 빨리 안 고치고 뭐하나 모르겠다.
사람도 많이 다니는 곳에... 위험하니 얼른 고쳤으면 좋겠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피사의 사탑에 거의 아무런 흥미가 없다. 다만 지나가는길에 있어서 안 볼 수도 없고 해서 오긴 왔는데 여기도 사람이... 사람이... 사진은 안 찍었지만 성당 뒷쪽으로는 정말 클라우드떼같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우리는 기가 질려서, 이탈리아가 빨리 돈 많이 벌어서 피사의 사탑을 조속히 수리하기를 응원하묜서 황급히 후퇴했다. (주차비가 정말 무료인지도 확실치 않기도 했고... 망할 놈의 주차장 시스템...)
이제 우리는 해안 가까이 놓인 고속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이탈리아의 작은 알프스'라고 불리는 아푸안 알프스의 장엄하고 멋진 경치를 보면서 차를 달렸다. 이 작고 멋진 산맥은 미켈란젤로가 조각상 제작에 사용할 최고급 대리석을 구한 채석장으로 유명한데, 시간이 넉넉했으면 그 채석장에 들러보려고 일찌감치 구글맵에 찍어둔 곳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생각보다 시간이 늘어지면서 그냥 넘기기로... 아쉽게도 나는 운전 중이라 사진을 못 찍었는데, 옆 자리 아내가 사진 찍어주기를 극구 거부해서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왜 그랬을까. 밥 먹기 전이라 예민했던 모양... 그래서 일단 밥을 먹으러 휴게소에 들렀다.
우리는 구비구비 산길을 달려서 이탈리아 북서부의 멋진 해안마을 다섯 개가 모여있는 친퀘 테레에 도착했다. 친퀘 테레 중에서도 해안이 가장 넓다는 몬테로소알마레에 왔는데, 멀리서 봤을 때의 경치부터 사람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잠깐이지만 비밀의 정원 같은 숲길을 걸었다.
또, 좁은 골목길 계단을 내려왔다.
마을 입구까지 내려오니 갑자기 딴 세상이 펼쳐진다.
'친퀘 테레'는 '다섯 언덕'이란 뜻으로, 울퉁불퉁 해안 절벽 지형에 아름다운 다섯 마을이 있어서, 이를 트레일 코스로 묶어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게다가 지금은 심지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 됐다.
사실 우리 부부는 2015년도에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에 갔었기에, 뭐 거기랑 비슷하겠거니 싶어서 모든 마을을 열심히 다 찾아다닐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냥 제노바까지 가는 길에 하나쯤 찍고 가는 일정으로 삼았다.
그런데 동네가 너무 이쁘잖아~~~! ㅎㅎㅎㅎㅎ
이 지역은 제노바 또는 피렌체에서 기차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절벽 사이를 터널과 다리로 통과하는 기찻길이 잘 연결되어 있어서, 부지런히 다니면 심지어 하루에 다섯 마을의 관광을 다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정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차로 편리하게 찾아왔다가 떠나간다. 우리는 렌터카 이용자라서, 주차장 이용 등 변수가 많겠다 싶어서, 그 중에 딱 한 마을만 보기로 한 것이다. 차가 편할 때도 많지만 오히려 짐이 될 때도 있다. #친퀘테레는_기차로가세요
우리는 지중해 물에 발을 (소심하게) 찰박 담그면서 잠깐의 힐링 타임을 가진 뒤, 마을 구경을 했다.
아내가 여기저기 앞장서서 돌아다니다가, 성당과는 별채로 마련된 이 마을의 공동 기도처를 발견했다. 들어가서 안내문을 읽어보니(구글 번역기 최고!) 뱃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렇지! 이곳도 사람이 살던 곳이었지...
지금처럼 관광업이 발달하기 전에 이곳은
내륙과 고립되어 고기잡이에 의존하던 작은 해안 마을에 불과했을 것이다.
기찻길이 마련된 뒤에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일하러 나섰을 것이다.
나라 경제가 어렵던 시절에는 이 지역 주민들도 많이들 이민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전쟁 때는 벙커를 지어놓고 요새 역할을 떠맡아야 했을 것이다.
갑자기 이 마을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친퀘 테레. 그 중에서 몬테로소알마레. 그래봤자 관광지일 뿐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막 좋아지는지. 정겹고 귀엽고 신기한 마을이었다. 동시에, 이렇게 고립되고 험준한(?) 지형에서 오래 전부터 살아왔을 어부들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
지중해변의 이런 작고 아름다운 마을들은 사실 스페인부터 크로아티아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많다. 감사하게도, 살다보니 그런 마을들을 그간 꽤 다녀보았다. 관광지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도 어마무시하게 많다. 이런 곳에 올 때마다 영혼이 잠시 쉼을 누리는 기분이 든다. 세상 걱정 근심을 잊고 잠시 세상 밖의 것에 눈을 돌리게 도와주는 그런 소중한 장소들이 아닐까 싶다.
제노바 숙소에 도착했다. 제노바 항구 바로 앞, 아프리칸/아시안 이민자들의 집단 거주구역에 있다. 처음엔 주위의 지저분한 환경을 보고 실망했다. 어쩐지 좀 싸더라 싶었다.
하지만 내부 시설은 괜찮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 비록 이때만 해도 아직 몰랐지만 - 이 낙후된 지역에 숙소를 구한 것은 우리가 앞으로 제노바라는 도시를 더 잘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다음 글 : [이탈리아 8편] 제노바 - 해양 박물관(Galata Museo del Mare)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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