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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 메이커/2015 이탈리아 프랑스

[프랑스] 파리 - 오라토리 드 루브르 개혁교회 다녀오기

파리 여행 중에 주일을 맞았다.
우리는 시내 한복판, 루브르 바로 근처에 있는 오라토리 개혁교회(de l'Oratoire du Louvre)에 가기로 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날, 찬란한 도시 파리의 아침을 걸어서 교회에 갔다.
인도와 차도 사이에서 물이 흘러나와 도로를 자동으로 청소해주고 있었다. 이거시 선진국의 위엄인가?? 신박하다. ㄷㄷㄷ
CCTV도 엄청 귀엽다.

 

예배당에 도착했다. 입구는 건물 북쪽에 있다. 구글에는 "Temple protestant de l'Oratoire du Louvre"라고 나온다. 홈페이지 주소: www.oratoiredulouvre.fr
웅장한 석조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 장식은 조촐한 교회가 나온다. 건물 중간 좌측에 높이 올려놓은 강대상이 보인다. 오늘 찬송가 몇 장을 부르는지는 예배당 기둥에 붙어 있는 목판에 숫자판을 꽂아둔다.
예배 준비가 한창이다. 시편 찬송가가 비치되어 있다.
맨 앞장에 예배순서가 인쇄되어 붙어있다. 앉았다 일어섰다 해야 하는 순서가 참 많았다. 이런 것이 다 신학적 의미가 있다. 찬송은 단순해서 대충 뻥긋뻥긋 따라부를 수 있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개혁교회는 예배 중 찬송가로 시편송을 사용한다. 반면에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 교회들은 자체 개발한 복음송을 찬송가로 채택해서 부르고 있다.
강대상 앞쪽은 예배당 건물의 중앙부에 해당하는데, 이 자리에는 어린아이들이 따로 앉았다. 물론, 부모와 함께 앉아서 예배드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조금 큰 아이들이 이곳에 앉았다. 예배 중 성경말씀을 낭독하는 순서를 아이 중 한 명이 맡아서 했다. 강대상 아래엔 또 다른 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생명의 떡이요(요한복음 6:35)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니, 성찬상이다.

예배당은 작지 않은 규모였는데, 시내 중심부에 있어서 그런지 1층 회중석이 거의 다 찼다. 예배는 전체적으로 질서정연하고 경건하게 진행됐다. 지금은 설교 중이다. 뭔 소린지 못 알아먹었지만, 잠자코 참여했다.

성경 강해가 시작되기 직전에, 중앙에 앉았던 아이들은 예배당 앞쪽에 있는 별도의 방으로 이동했다. 어른들이 설교를 듣는 동안, 별도의 공간에서 아이들을 위한 성경 교육 시간이 있는 듯했다.

헌금 순서 앞에 광고를 둔 순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와 같았다. 이때의 헌금에는 연보(자선을 위한 모금)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무엇을 위해 연보할 것인지를 광고시간을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 강복선언 순서는 감동적이었다. 한국의 교회들은 이것을 “축도”라고 해서 마치 마무리 기도인 것처럼 모두가 눈을 감는데, 본래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이곳에서도 젊은 목사가 양손을 펴고 회중을 바라보며 축복하고, 그 모습을 회중이 눈을 뜨고 지켜보았다. 강대상이 높이 들려 올려져 있기 때문에 회중을 향해 복을 선언한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예배 마치고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막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이 워낙 관광지 근처라서 익숙한 듯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들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
중앙 강대상 앞 편 아이들 앉아있던 자리 뒤에 몇 칸의 장의자가 놓여 있었다. 글자가 새겨져 있어 유심히 보니 항존직들의 좌석이었다. 직분의 중요성과 동등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좌석배치였다. Conseillers, Presbyteraux, Diacres. 얼마나 오래된 의자일까!
설교 시간에 아이들이 이동해서 별도의 교육시간을 가진 공간에 들어가보니 이렇게 생겼다.
예배당 입구 쪽 게시판에 공지사항들이 붙어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역시 교리도 잘 가르치고 있었다. 4~7세는 성경에 눈뜨기 단계로, 예배드리는 중에 1시간 15분 동안 별도로 성경을 공부한다. 8~11세는 성경학교라는 이름으로 야유회와 함께 10시 30분부터 16시까지 공부한다. 12~15세는 교리공부를 한다. 공부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게 놀라웠다. 중간에 놀라운 포스터도 보인다. 연중 일정한 시간을 내서, 초보자(화), 기존 학습자(월), 고급반(수)을 대상으로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단하다! 한국의 교회들도 이런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입구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 성도들

 

다시 걸어서 숙소 쪽으로 오는데, 공원에 사람들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은 해만 비쳤다 하면 다들 나와서 광합성을 한다.
깍둑썰기를 한 조경수.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보기 좋다.

 

라 로셸에서 간식으로만 떼운 것에 질려서 정말 오랜만에 한식을 먹어보았다. 우리는 여행 중 한식을 거의 챙겨먹지 않는데 이번엔 좀 먹어보고 싶었다. 일단 주문할 때 한국말을 써서 마음이 편했고, 맛도 꿀맛이었다. ㅎㅎㅎ
예쁜 아케이드 거리를 지나서
파리의 아름다운 골목길...

 

에피소드 하나.

걷다보니 우연히 어느 성당 앞에서 쉬게 되었는데...

무심코 안내표지판을 읽던 아내가 깜놀하며 소리쳤다. "어! 여기.. 라 로셸이다!!"

안내판을 보다가 순간 갸우뚱했단다. 방금 본 문구 중에 ‘La Rochelle’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상해서 다시 확인했더니 정말이었다! 놀라서 꼼꼼하게 번역해보니 라 로셸 함락 후에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개축한 성당이라는 것 아닌가! 아내의 설명에, 이게 웬 얻어걸린 고급정보냐! 하면서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봤다.

성당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성당 앞쪽 제단화에 눈길이 갔다. 거기엔 다름 아닌 리슐리외와 루이13세가 그려져 있었다.
세상에! 마리아가 승리를 축하하는 듯 두 사람에게 풀 한 포기를 하사하고 있었다. 배경에는 라 로셸을 상징하는 생니꼴라타워와 체인타워가 보이고 전사자 한 명이 누워있었다. 라 로셸의 위그노 병사였다. 흐릿하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망토에 그려진 문장이 어제 본 라 로셸 전통의상의 그것과 똑같았기 때문.

 

이 그림을 간단히 해설해보자. 왼쪽 그림은 동일한 사건을 다룬 다른 버전이다. 두 그림 사이에 차이점이 보이는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빨간 망또를 걸친 사람의 "위치"가 다른 것이다. 저 사람은 라 로셸 포위전을 기획했고, 준비했고, 직접 현장 지휘까지 했던 "리슐리외 추기경"이다. 교회의 직분자가 세속 정치에 직접 관여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있는데, 그는 아예 직접 전장을 누비면서, 위그노들의 도시였던 라 로셸을 철저히 압박 섬멸한 자였다. 정복된 라 로셸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위그노들은 강제 개종은 물론, 조그마한 성경책 소지조차 허락되지 못했다리슐리외는 라 로셸을 철저히 짖밟은 뒤, 정치와 종교의 야누스가 되어 자신의 업적을 이렇게 치장했다. 빅토리 성당을 세우고, 그곳 최고의 핫스팟에 기념벽화를 놓으면서 그가 채택했던 그림은 "우측" 그림이었다. 그가 바라던 어떤 조건을 "좌측" 그림은 꼼꼼하게 만족시키지 못했고, 탈락했다. 그는 어떤 포지션을 원했을까. 그것은 바로, 성모 마리아와 루이 13"사이"에 위치한, "중보자"였다.

그렇다. 교회의 직분자가 세속 정치에 맛을 들이면 이렇게 추한 예술품으로 영원토록 남는다. 라 로셸을 생각할 때 우리는, 위그노들의 처절한 고난과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에서도 배울 점이 많겠지만, 그 도시를 점령했던 자들에 대해서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오늘날 우리 주위에 그런 욕망을 가진 자들이 여전히 있지 않은지, 나 자신은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지를 말이다...

 

잠깐의 놀라운 경험을 뒤로하고 다시 숙소로 걸었다. 골목을 잘 골라서 걸었는지, 예쁘고 신기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날씨도 좋았고, 도시는 깨끗했고, 간판과 쇼윈도의 디스플레이는 깜찍했다. 루브르 근처 루이 14세 기마상 있는 곳에서부터 첫째 날 지나갔던 쁘띠 까호 거리까지 사이에 있는 작은 골목길들을 걸었다.

눈과, 두뇌와, 가슴이 호강했다.

이제 잠시 쉬었다가, 오후엔 프랑스 국립도서관(미테랑 도서관)에 가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