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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10

[스위스] 제네바 - 5년만의 재회 파리에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제네바까지 세 시간을 달린다. 빠르고 쾌적하고 안전한(느낌이 드는) 기차여행을, 마음이 편한 분들과 함께 앉아서 했더니, 세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짧게 느껴졌다. 강사로 따라와서 긴장되었던 마음이 잠시나마 힐링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힐링이 잠시 후 스트레스로 바뀐다. ㅎㅎㅎ 스위스 현지 가이드 분의 수준이 너무나도 열악했기 때문에 ... ;; (종교개혁 탐방에 대한 준비가 1도 안 된 사람이 나와버렸다. 결국 대부분의 해설을 내가 해야 했다. 어찌보면 이날을 위해 내가 따라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 제네바의 종교개혁과 관련해서 국민일보에 기고했던 글: 제네바에서 칼뱅은 무엇을 했을까? - mytwelve 아름다운 레만 호수 끝에 위치한 제네바.. 2019. 6. 24.
[프랑스] 스트라스부르(2) / 귀국 우리는 동선이 좀 길어지기는 하지만 - 그리고 나는 라 로셸에서 다친 발이 무척 아픈 상태였지만 -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트라스부르 도서관에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히 막막한 짓이었으나, 어쨌든 그때 우리는 거기에 가기만 하면 무조건 모든 정확한 정보를 다 알아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 칼뱅은 이 도시에서 이들레트 드 뷔레를 만나서 결혼했다. 그들은 스트라스부르의 골목길을 함께 걸었을 것이다. 어쩌변 아까 그 푸셀레 거리를 자주 지나갔을 것이다. 그 거리를 걸으며 그들은 무슨 대화를 했을까. 그들이 언약했던 마들렌 교회당 건너편 강변에 서있을 때 그들은 무슨 미래를 그렸을까. 제네바 돌아가는 상황, 본국 프랑스에서 핍박받는 형제들에 대한 .. 2019. 6. 21.
[프랑스] 스트라스부르(1) - 우리는 왜 스트라스부르에 가는가? 2015년 이탈리아-프랑스 취재여행의 마지막 방문도시로 스트라스부르를 택했다 "우리는 왜 스트라스부르에 가는가.” 2017년 봄에 종교개혁 답사팀과 함께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했던 강의 제목이다. 종교개혁지 탐방이니까 종교개혁자들이 활동했던 도시를 가는 것은 맞는데, 그런 도시가 한둘이냐 이거다. 그 수많은 도시 중에서 왜 하필, 굳이, 스트라스부르를 가는지, 이유가 필요하다. 스트라스부르의 구 도심 ‘쁘띠프랑스’는 안동 하회마을처럼 강으로 오목하게 둘러싸인 마을이다. 유럽 여행자들이 예쁜 마을로 손을 꼽는 곳이며 신혼여행자들의 인기 코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쁨 그 자체’만으로는 우리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쁘띠 프랑스는 과거에 프랑스 난민들과 집창촌이 몰려 살던, 그야말로 열악한.. 2019. 6. 21.
[프랑스] 누와용(Noyon) - 칼뱅의 고향 파리에서의 첫 일정은 파리 근교(?)에 있는 누와용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이었다. 이 여행은 파리에 거주하시는 선배님의 도움을 받았다. 권현익 선교사님은 이날 우리를 위해 친히 운전과 가이드, 해설사 역할을 모두 담당해주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위그노 종교개혁 지도자들과 그 후원자들에 대한 정보를 개략적으로라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위그노 전문가의 해설과 안내 덕분에 무려 칼뱅의 할아버지의 흔적까지 추적하면서 누와용 답사를 풍성하게 할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빌어 다시금 권현익 선교사님께 감사드린다. ※ 관련하여, 누와용에 대해 기고했던 글을 링크한다. 칼뱅의 생가가 있는 누아용 - mytwelve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 현대의 누아용은 작은 마을이다. 필자가 이곳에 취재차 갔을 때는 당시 파.. 2019. 6. 19.
[스위스] 제네바 칼뱅의 도시, 제네바에 가는 날! 이때 종교개혁 박물관 내부는 사진촬영이 불가했다. 그래서 사진이 없다. 그런데 2017년에 다시 갔을 때는 노플래쉬로 간단히 찍는 것은 허용되었다. 참고하시기를. tip. 종교개혁박물관, 종탑(첨탑), 지하 고고학박물관은 각각 입장료를 받는다. 셋 다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통합 입장권을 사는 것이 편리하고 저렴하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두 개의 성당 종탑에 올라갔다. 현재 종은 고정되어 있고, 전망대 역할만 하고 있다. 우리는 둘 다 올라가느라 고생했지만, 가본 바에 의하면 두 군데 다 올라갈 필요는 없겠고, 호수 쪽 전망이 보이는 한 곳만 올라가면 된다. 둘 다 가려면 한쪽에 먼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또 올라가야 하므로, 넘 빡쎄다. ※ 아래 링크는 제네바의.. 2019. 5. 29.
[스위스] 바젤 인천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간 뒤, 곧바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스위스 바젤에 도착했다. 바젤의 지리적 위치는 특이하다. 스위스에 속하긴 했지만 세 나라의 국경지대에 위치한다. 공항에서 바로 왼쪽은 프랑스, 오른쪽은 독일 ㅎㅎㅎ 나올 때 잘(?) 나와야 한다. ㅋㅋㅋ 바젤 시내버스를 탔더니, "나라는 셋이지만, 바젤은 하나!"라는 문구가 보인다. ^^ 숙소는 바젤역 근처에 있는 YMCA 유스호스텔. 한국인도 많이 애용한다. 시설 깨끗하고, 저렴하고, 조식 훌륭하고, 숙박자 전원에게 시내 대중교통 1일권을 증정한다. 추천!! 여기서 트램을 타고 바젤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출국 전에 준비하면서 어느 다큐멘터리를 통해 바젤 미술관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전쟁 때 독일군이 가져간 미술품을 시민들이 돈을 모금해서 되.. 2019. 5. 29.
제네바 요리문답 전체 개요 제네바 요리문답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전제(1~7문), 2.믿음, 3.율법, 4.기도, 5.예배(혹은 교회) -전제의 핵심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배가 하나라는 것 -믿음의 핵심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신뢰하는 것 -율법의 핵심은 삶의 규범으로 베푸신 명령에 순종하며 사는 것 -기도의 핵심은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 -예배의 핵심은 모든 복락이 하나님께 있으며 그로부터 나온다는 것 올바른 인식, 올바른 믿음, 올바른 삶, 올바른 기도, 올바른 예배. 제네바 요리문답의 저자가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가 차분하면서도 집요한 문맥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기도와 선행과 말씀과 세례, 성찬에 대해서 그 구체적인 시행방식에까지 고백하도록 접근하는데 배우.. 2019. 5. 6.
멋있는 아저씨, 파렐 파렐(Farel) 참 멋있다. 파렐이 얼마나 멋진 아저씨였나 보자. 기독교강요를 하나 덜렁~ 출판해놓고 조용한 곳에서 책이나 읽으려고 슬그머니 내빼던 칼뱅을 파렐이 강력한 협박(?)으로 제네바에 붙잡아 남게 했던 에피소드는 많이들 들어서 아실 것이다. 그런데 스트라스부르크로 쫒겨났다가 다시 복귀할 때 그 때도 파렐이 다각도로 힘을 썼다는 사실은 많이들 모르신다. "형이 가라면 가기야 하겠지만, 아~ 진짜 싫거덩!!!" 이렇게 칼뱅은 우는 소리로 편지를 쓰기도 했으니... ㅎ (제네바에서 초기에 당한 일을 생각하면 정말 싫었을 것이다!) 파렐은, 정작 자기는 다시 부르지 않는(ㅡ,.ㅡ;;) 제네바의 괘씸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찌 보면 자기 자신도 당대에 "쫌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참 어린 후배 목.. 2019. 5. 6.
칼뱅, 파렐, 틸레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에게 최근 일어난 일은 주님께서 무엇을 행하라고 하시는 것보다 세상의 질서에만 맞추려고 하는 악독한 자들이 일으킨 것 같네. 하지만 내가 부탁하는 것은 스스로의 입장에서 자네의 교회 운영방식에 비난받을 만한 것이 혹시 있는지 숙고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네. 자네가 주님의 눈앞에서 겸손해지는 방식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그리하여 주님이 정하신 자들의 구원을 돕고, 그러한 구원이 점점 더 늘어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자네에게 풍성한 은혜와 재능을 주신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나." 배경지식 없이 이 편지글을 읽은 사람은, 어느 경건한 신앙의 선배가 미성숙한 사역으로 교회에 어려움을 초래한 후배 사역자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하는 것처럼 여길 것이.. 2019. 5. 5.
1559년이 얼마나 신기한 해인가 종교개혁사에 있어서 1559년이 얼마나 신기한 해냐면... - 칼뱅이 기독교강요 최종판 완성한 해 - 베자와 함께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운 해 - 프랑스 개혁교회의 갈리아 신조 채택의 해 - 존녹스가 스코틀랜드에서 종교개혁 시작한 해 - 스페인 필립2세가 네덜란드에 주교좌 구축하며 종교개혁 탄압 시작한 해 - 엘리자베스1세가 수장령과 통일령을 발표한 해 -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하이델베르크)의 통치가 시작된 해 이게 모두 1559년에 일어난 사건들 !!! 2019.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