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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프로젝트/캐터키즘(catechism)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 내용 中 (교리교육 관련)



Q.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교리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왜 필요하냐는 질문은 사실 그 자체로 굉장히 이상한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본래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지난 수 십 년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더더욱 지금은 이단의 공격이 거세고, 또 세상은 교회와 기독교를 향하여 ‘무개념’이라고 손가락질하는 형편입니다. 기분이 나쁘지만 반박할 수가 없어요. 무(無)교리주의로 자라난 성도들은 무(無)개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겠어요. 지금이라도 교리를 가르쳐야 기독교가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신천지 등의 이단사상으로 빠지게 되는 위험성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A. 대처 방안은 단 하나, 제대로 된 교리교육 뿐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교리교육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검증된 커리큘럼을 따르는 것입니다. 공교회가 함께 인정하고 고백하는 전통적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를 따르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제네바 교리교육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 소요리문답 등의 문서인데, 이것을 공부하면 이단으로 빠질 위험이 없습니다. 모두 교회사 속에서 대단히 유명하고 잘 만들어진 것으로 정평이 난 문서들이자 교리교육 교과서들입니다.

Q. 그 문서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신다면

A. ▲제네바 교리교육서는 종교개혁자 칼뱅이 제네바의 학교와 교회에서 가르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 형식과 구성에 있어서 이후 교리문답들의 어머니와도 같은 것입니다. 373개의 문답으로 되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는 종교개혁을 겉으로만 흉내 낸 영국의 성공회에 대항하여 존 녹스와 동료들이 만든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로마 가톨릭의 압제를 받던 식민지(네덜란드) 교회에서 개신교의 교리가 이단적인 것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귀도 드 브레라는 목사가 만든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독일의 팔츠지방 영주였던 프리드리히 3세가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의 종교개혁의 흐름을 하나로 통일하고자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 등의 신학자를 불러서 만든 것입니다. 이 요리문답서는 매우 잘 만들어져서 전 유럽의 표준 요리문답서가 됩니다. ▲도르트 신조는 네덜란드에서 예정론을 잘못 이해한 일단의 학파에 대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교리가 무엇인지를 확립하기 위해 열린 종교회의의 결과물입니다. 이 회의에서 알미니우스 등의 주장은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여기서 확립된 교리가 일명 TULIP교리라고 하여 칼뱅주의를 대표하는 교리로 알려졌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은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 기간에 의회파의 요청으로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가 열렸고, 거기서 나온 표준문서들입니다. 신앙과 삶과 교회와 예배와 정치 등 기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신앙인이 무엇을 따라야 할 것인지를 정리한 문서로서, 특히 오늘날 한국의 장로교를 비롯한 수많은 교회가 이 문서를 따르고 있으므로 중요성이 가장 크다 하겠습니다.

Q. 현재 진행하고 계신 교리교육은 기존에 행해지던 방법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요

A. 세 가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소통'입니다. 그것을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고, 지키고 있습니다.

먼저, 저는 기존 교리교육의 방식을 중세 로마가톨릭적이라고 비판합니다. 당시 가톨릭 교육의 특징은 성도들에게 성경을 주지 않고, 사제가 지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 성도와 성직자의 영역을 나눈 것이죠. 우리는 종교개혁으로 그것을 바꾸었지만 현장에서의 교육 방식은 그대로 답습했어요. 교사가 책을 가지고 학생들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빈칸만 주고 답하게 만드는 형태는 중세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교사와 학생이 같은 책을 공부할 수 있도록, 자습서 형태의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교리를 공부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렵고 고리타분하다는 생각부터 합니다. 다들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어려운 신학책에 어려운 개념을 다시 또다른 어려운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지금 우리 형편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세기의 공부방식으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 교회에서 이탈하고 있는 성도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30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유원지로 놀러가버린 것이 아니라, 잘 가르치는 교회로 옮겼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들은 주입식 가르침과 구역모임 등에서 이루어지는 낮은 품질의 교육에 자기 인생을 더 이상 맡기려 하지 않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저는 교리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티칭 방법론을 고민했고, 교재에 반영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하려 합니다.

끝으로, 교회가 이제는 교육 방식을 고급화 시켜야 합니다. 건강음료를 유리병에 담지, 종이팩에 담아 팔지 않습니다. 좋은 내용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좋은 그릇에 담아서 제공해야죠. 제가 책 하나를 만들면서 콘텐츠 개발과 디자인 및 인쇄 과정을 고급화 시켜서 1억 가까이 투자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Q. 평소 교리와 삶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 두 가지가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요.

A. 한국 교회는 대체로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사영리 전도’ 수준의 아주 기초적인 원리를 배우고 나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합니까 이제 구원받았으니 천국에 가면 되는데, 그래서 죽기 전까지 그저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시간 나면 교회 봉사도 좀 하고, 전도도 좀 하고…. 그렇게 살다가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최대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언제나 만족한 듯 흐뭇한 표정만 짓고 있으면 신앙이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 사회 속에서 크리스천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에 대한 교육은 약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 성도들의 1차 목표는 교회에서 우리끼리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살다가 곱게 죽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교리문답은 삶에 대해 가르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에 이같은 사실이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전체 교리문답의 66%, 즉 3분의 2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십계명 해설에 할애되었는데, 바로 이 십계명은 ‘성도의 삶’에 대해 매우 자세히, 그리고 비중 있게 다루는 부분입니다. 교리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