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위즈덤 프로젝트/ETC

패러디 문학세계 : 작품 3 - 희상전(喜商傳)

희상은 신학대학원(神學大學院)에 살았다. 곧장 기숙사에 닿으면, 매점 위에 오래 된 철문이 있고, 복도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였는데, 단칸방 기숙사 방문은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희상은 요리문답 연구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M.Div를 하지 않으니, 신대원을 다녀 무엇 합니까?” 

희상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전도사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전도사 일은 봉고차 운전을 못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과외는 못 하시나요?”

“과외는 지방대를 나온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전도사 일도 못 한다, 과외도 못 한다면, 부흥회라도 못 하시나요?”

희상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요리문답 연구에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희상은 출판계에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페이스북에 접속하여 친구들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기독교 출판계에서 제일 잘 나가시요?”

성기문 교수를 말해주는 자가 있어, 희상은 곧 성기문 교수의 거처인 분당을 찾아갔다. 희상은 성교수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책을 좀 내보려고 하니 인쇄비를 좀 대주시기 바랍니다.”

성교수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계좌번호를 받아 송금했다. 희상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성교수의 아내와 자녀들이 희상을 보니 거지였다. 신발은 아가리를 벌려 너덜너덜하고, 뒷굽은 닳아 없어졌으며, 쭈그러진 티셔츠에 허름한 반바지를 입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희상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인쇄비를 준다 하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성기문교수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인쇄비를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느냐?”

 

희상은 인쇄비를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신대원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은 온갖 신학책이 모이는 곳이요, 신간서적 코너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신조와 요리문답 책을 모조리 대출했다. 그리고 자기 요리문답 책을 인쇄해서 교내 서점에 쌓아두었다. 희상이 다른 요리문답 해설서를 몽땅 쓸었기 때문에 모든 전도사가 교리교육을 못 시키는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희상에게 책을 대출해주었던 사서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희상의 책을 사 가게 되었다. 희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책 한 권으로 온갖 교회의 교육을 좌우했으니, 기독교 교육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중략)

희상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절판된 좋은 책의 판권을 샀다. 그러고도 현찰이 십만 냥이 남았다.

“이건 성기문 교수에게 갚을 것이다.”

희상이 가서 성교수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성교수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출판을 실패 보지 않았소?”

희상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 일이오. 출판사업으로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하고, 십만 냥을 성교수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인쇄비를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성교수는 대경해서 일어나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희상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성교수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희상이 신대원 밑으로 가서 조그만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늙은 신학생이 매점에서 참깨라면을 먹는 것을 보고 성교수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기숙사가 누구의 집이오?”

“M.A과정 황희상 원우의 방이지요. 가난한 형편에 요리문답만 좋아하더니, 하루아침에 학교를 나가서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학교를 나간 날로 휴학계를 냈지요.”

성교수는 비로소 그의 성이 황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후략)

 

※ 2011년 9월 15일 작성. 특강 소요리문답 원고를 디자인팀에 넘겨놓고 추천사 받으러 다니던 시절 ㅋㅋ

 

 

원글: 페이스북 ^^ www.facebook.com/note.php?note_id=287345324612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