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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 메이커/2018 미국 서부 - 봄 | 가을

[미국] 베린저 운석공 or 미티오(메테오) 크레이터(Meteor Crater), 나바호 인디언 자치국

* 본 블로그에서 인디언이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했으나 이는 과거의 습관에 의한 것으로, 가능한 "원주민"이라는 용어로 바꿔 부르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들은 이후로는 그렇게 실천하려 노력 중입니다. 다만 과거에 쓴 글의 본문 중에 종종 이런 표현이 고치지 못한채 남아있을 수 있으니 양해를 구합니다.


그랜드 캐년의 석양을 보고 나와서, 그날 밤에는 플래그스태프라는 동네에서 잤다. 그런데 여행을 준비할 때 동선을 잡으면서, 지도상에서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운석이 떨어져서 생긴 구덩이(크레이터)가 있는 것을 봤다. 이런 걸 직접 볼 기회가 흔치 않으므로, 좀 돌아가는 길이긴 하지만 가보기로 했다.

플래그스태프를 뒤로 하고, 루트66을 따라 동쪽으로 40분 정도를 더 달린다.
고속도로 반대차선에는 차량 사고가 있었는지 연기가 나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크레이터 쪽으로 뚤린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달리는데 정말 황량한 지역이다. 운석이 이런 곳에 떨어져서 다행(?)인가? ㅎㅎㅎ
웃기는 표지판이 있다. 우리 제한속도는 50마일인데 운석 제한속도는 26000마일 ㅋㅋㅋ
구글맵에서는 이렇게 보이는 곳이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미티오 크레이터가 정식 명칭인데, 이곳이 화산폭발이 아니라 철 성분의 운석이 만든 구덩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주변 땅을 사버린 베린저라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 '베린저 운석공'이라고도 한다. 전 세계에서 크레이터 모양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NASA 우주인들이 달 착륙 직후에 수행할 업무에 관한 훈련을 이곳에서 하기도 했다.

 

위성 지도로 볼 때는 그냥 근처에 주차장이 보여서, 거기 차 대놓고 잠깐 내다보고 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미국은.. 늘 그렇듯, 여기서도 뭔가를 가르치려고, 박물관을 만들어 두었다. ㅎㅎㅎ 생각 못했던 입장료도 내야 했고... 하지만 몇 번의 박물관을 경험한 우리는 입장료 내는 것이 1도 아깝지 않았다. (사실 입장료가 좀 비싼 편이긴 한데, 베린저의 후손이 소유한 사유지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
이곳도 야외 공원을 정비중이었다.
얘가 바로 그 무시무시한 구덩이를 만든 놈이다. 돌덩어리가 아니라 쇳덩어리다.
전시실은 생각보다 커서, 운석이라는 놈이 지구에 떨어질 때와 관련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
관련해서, 민가에 떨어진 운석들에 대한 사례나 피해 규모 등도 소개한다.
실제로 운석이 떨어지는 현장에 내가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를 간접 체험(?)하게 해주는 룸도 있었다. ㄷㄷㄷ
전시실 밖으로 나오자, 엄청난 광경이 펼쳐진다. 이건 파노라마로 찍지 않으면 카메라 화각에 담기지 않는다.
망원경으로 보면, 충격파에 의해 날아가서 쳐박힌 엄청난 크기의 바윗덩어리도 보이고, 탐사 당시의 흔적들도 보인다.
여기서 한참을 감탄하며 구경하다가, 문득 미국은 '주'마다 시차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다음 코스에 예약해둔 일정이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시간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마음이 급해져서 서둘러 점심을 포장해서(SUBWAY 샌드위치) 차에서 먹기로 하고 다시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 연기가 나던 트럭은 결국 완전히 전소된 상태였다.
플래그스태프 쪽으로 다가가면서 아침에 봤던 산(험프리 피크)이 아름답고 시원하게 두 눈을 자극한다.

 

근데 여기서 조금 부끄러운 사건이 벌어진다. 이 길로 쭉 가다가 북쪽으로 꺾어서 나바호 자치구역 쪽으로 가는 89번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아래 사진) 구글 네비가 조금 더 지름길을 안내하면서 "로드" 등급의 지방도로로 접어들게 되었다. 나는 지금 시차를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한 상황이어서, 도로의 등급이 고속도로가 아니라 일반도로로 바뀐 경우엔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했고, 잠시 후 뒤에서 하얀 차가 따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바짝 따라오는 차를 보고, 처음엔 내가 너무 느리게 가니까 뒤에서 트럭이 붙는구나 싶어서 더 밟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좁은 길에서 속도를 더 내는 것은 위험하겠다 싶었고, 다음 순간, 아차! 저게 지금 경찰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총기 휴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 경찰이 길에서 차를 세울 때 얼마나 피차 긴장하게 되는지를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뒤에서 세우기 전에 내가 먼저 자수(?)하는 게 낫다 싶어서, 비상 깜빡이를 켜고 속도를 줄였다. 그 즉시 뒷차도 사이렌을 켜면서 나를 세웠다.

레인저 복장의 경찰(카운티 보안관)이 조심스럽게 다가왔고, 우리는 짧은 영어로, 와우! 웁스! 하면서, "이 길 처음이라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경찰은 이거 렌터카냐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냐 등을 물어보다가 면허증을 가져가서 보고 오더니, 결국 "고 슬로우! 낫 페스트!"라는 귀한 말씀으로 권면하시며 훈방조치를 해주시었다. ㅋㅋㅋ 아마 발빠른 자수(?) 때문에 좋게 봐준 것이 아닌가 싶다. 나중에 미국에서 살았던 분들께 이야기 했더니, 럭키한 케이스라며, 무서운 경찰에게 걸리면 아주 험한 꼴을 당한다고 알려주셨다.

이제 나는 아주 얌전한 모범 드라이버가 되었다.
나바호 자치구 보호구역으로 가는 길.
보이는 것은 이렇게 도로와 흙 뿐이다.
마음이 바빠 죽겠는데, 황색 두 줄 상태에서 앞에 이렇게 하느작하느작 "고 슬로우" 하시는 캠핑카가 나타나면 답이 없다. ㅠㅠ
한참을 달려, 더 이상 지루해서 못 가겠다 싶어지는 시점에서 모종의 경계선을 만났다. 여기서부터는 나바호 원주민(인디언)들의 자치구역이라고 한다.
똑같은 길인데 사뭇 분위기가 달라진 땅을 크루즈 하면서 기분이 묘했다. 한때 이 대륙 전체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서 이렇게 외딴 산간지역의 일부에서 살고 있다. 세월이 흘러 우리처럼 관광객 신분으로 그들의 땅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이제 관광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없이 펼쳐진 광야에 군데군데 캠핑장이 있다. 드넓은 "인디언의 땅"을 달리며, 마음은 차분해지고, 머리는 살짝 복잡해졌다.

 

이제 우리는 파월 호수(Lake Powell) 근처의 페이지(Page)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가까운 곳에 요즘 뜨는 관광지 "엔텔로프 캐년(Antelope Canyon)"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