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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프로젝트/기후 위기(climate crisis)

기후위기 해결하기(9) - 정책과 제도로 서포트하기 (feat. 부동산과 복지 정책, 사우디 네옴시티)

지난 글에서 4차산업혁명 기술이 탈탄소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세상이 바뀔 수는 없다. 그 기술을 현실 세계에 적용하려면 정치적인 결단력과 적합한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개인이 알아서 고군분투 하는 것과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밀어부치는 것은 효율과 효과 측면에서 비교할 가치조차 없다. 이번에도 몇 가지 사례들을 보면서 이야기 해보자.

 

1. 넷 제로 에너지 빌딩

개인이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하고 뭐 종이빨대를 쓰고 다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더 큰 차원에서 더 효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의 2번 글에서 봤던 그래프를 다시 보자.

 

건물의 냉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전체 탄소배출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17.5%). 심지어 교통 전체보다 더 많다. 그렇다고 냉난방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적어도 쓸데없이 소비되는 에너지는 없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건축물 구석구석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 가만 놔둬도 탄소가 줄줄 새는 거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건축 및 리모델링을 통해 건물의 단열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근데 이걸 하려면 돈이 든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열 손실 좀 줄이겠다고 값비싼 건축자재를 쓰는 것을 돈지x이라고 생각한다. 건축 회사도 비용이 더 드는 방식을 좋아할리 없다. 따라서 이는 시장경제에 맡겨놓아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하지만 기후 위기 앞에서, 탈탄소라는 거대한 목표를 위해서는,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단호하게 할 필요가 있다.

 

  • 건물마다 태양광 패널 설치를 강제하여 최대한 많은 "무료" 에너지 생성

    태양광 발전기와 충전시스템(ESS)이 설치된 빌딩에서는 건물의 공용부문에 대한 전기요금을 아예 안 낼 수도 있다. 현재 서울 기준으로 주상복합 오피스텔의 경우 공용전기요금의 비중이 상당하다. 그 부분을 태양에 맡기자는 것이다. 이것 역시 대단히 어려운 뭔가가 따로 필요한 게 아니다. 기존의 건축법 혹은 공동주택법 등에서 규제함으로서 실현 가능하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는 공공건물에 대해서 강제 이행 법률을 적용하고 있다.
  • 최신 단열재료를 건물의 외벽과 지붕에 강제로 사용

    건축자재도 겨울이 되면 수축한다. 그러면 틈이 생겨 열이 빠져나간다. 요즘은 수축이 잘 되지 않는 자재가 나와있다. 당연히 비싸다. 철근도 빼먹는 나라에서 이걸 자율에 맡겨둔다면, 될 턱이 없다. 하지만 법과 제도로 강제하여 대량 생산을 유도하면 가격도 맞출 수 있다. 또 에너지 효율이 높은 창호, 조명, 가전제품으로 설비의 요건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중창과 샷시가 잘 된 건물은 난방비가 상당히 절감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단열조차 안 되는 건축자재는 완전히 퇴출시켜야 한다. 적어도 신축 건물부터라도 허가 요건을 높여야 한다. 선진국 뿐만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다 그렇게 해야 한다.


  •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만 유통되도록 강제

    관련하여, 가전제품도 법적 기준을 높여야 한다. 지금은 에너지등급이 좋은 가전제품이 "비싸다". 그래서 저렴한 제품을 찾는 사람들은 그냥 소비전력 효율이 낮은 저가형 제품을 선택하고 마는 아이러니가 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것은 시장경제에 맡겨놓아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에너지효율이 떨어지는 가전제품은 기준을 정해서 탈락시켜, 시판 금지를 시켜야 한다. 요즘은 스마트 조명 / 가전 시스템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최적화할 수 있다.

  • 도심 내 신축 빌딩의 경우 히트 펌프를 설치하여 난방(또는 냉방)에 사용

    가스 등 기존 화석 연료로 도심 내 난방을 공급할 경우 아무리 최적화를 시킨다 하더라도 실시간으로 에너지를 낭비되지 않게 관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에너지로 난방을 공급하는 히트 펌프 시스템으로 바꾸면, 하다못해 보일러 온도 맞추는 것조차 Ai가 훨씬 잘해줄 수 있다. (※ 테슬라 마스터플랜 3에서 소개된 바 있음) 몇 시간에 한 번씩 몇 도 정도로 에너지를 쏴줘야 가장 최적의 효율이 나오는지를 사람이 계산하는 것은 어렵지만, 컴퓨터에겐 너무도 쉬운 일이다. 최근 호주에서는 앞으로 새로 공급되는 모든 주택단지에 가스 연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화석연료 쓰지 않고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로만 주택 냉난방을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탁월한 정치적 결단이다.

 

궁극적으로는 향후 건축되는 모든 건물이 넷제로 에너지 빌딩이 되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신속하게 시행해야 하며, 기존 건물도 가만 두지 말고 이행보조금을 책정하든지 해서 리모델링을 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건축과 부동산 쪽은 대단히 보수적이다. 일명 "토건족"이라 불리는 이들은 변화를 싫어할 수 있다. 마진이 줄어들기 때문에 당연하다. 사기업에게 사회가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서 정부가 있고 사회적 합의가 있으며 정책 수립이라는 행위가 있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주는 등, 딜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아파트 값은 개별난방이 중앙난방보다 더 높다. 중앙난방은 왠지 옛날 방식이고, 저렴한(?)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탈탄소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는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다.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는 중앙난방이 훨씬 유리하다. 종합 에너지 관리 시스템(EMS)은 건물의 에너지 사용량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EMS는 건물의 에너지 사용량을 최적화하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그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계산하고, 또한 예측한다. 히트펌프 기술도 그런 시스템의 한 부분이다. EMS 기술의 발전으로 중앙난방도 개별난방처럼 충분히 콘트롤 면에서 자유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웬만한 선진국의 공공기관/공기업 등이 사용하는 건축물에서는 벌써 이러한 기준이 시행되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갈 길이 너무도 멀다.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넷제로를 향한 법과 제도, 정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그런 정책을 공약으로 걸고 펼쳐 나가는 정치인을 지지하고 후원하며 선거에서 찍어줘야 한다.

참고로, 이런 건축물 위주로 도시를 형성한 해외 사례들은 얼마든지 많다. 자연적으로 시민들이 힘을 모은 케이스도 있고, 국가나 도시 차원에서 테스트 베이스로 시도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보봉마을'이 국내 공중파 다큐멘터리로 소개되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관련 유튜브 영상 : 독일 보봉마을 태양광 주택 안은 어떤 모습일까? - YouTube

 

※ 간혹 보면, 이러한 강력한 정책을 펼칠 권한이 정부에 없고,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다. 그런데 기존에 '백열등'이 한 순간에 죄다 LED 전구로 교체되었던 기억을 떠올려보셔야 한다. 누구나 LED 조명 좋은 걸 안다. 하지만 비싸서 못 바꿨다. 그러다가 정책적으로 백열등을 금지시키며 LED 사용을 강제하자 수요와 공급이 일순간에 조절되면서 가격이 내렸다. 세상은 금방 LED로 바뀌었다. 심지어 멀쩡한 백열등을 버리고 서둘러 LED로 교체했다. 필라멘트가 나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시 교체한 것이다. 이런 일에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21세기에 살고 있다.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면 사회적 합의 및 법과 질서에 따라 적절한(제한된) 강제성을 부여하는 선진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2. 스마트 그린 시티 - 네옴시티

넷제로 에너지 건축이 도시 규모로 확대되면 그게 바로 "스마트 그린시티"이다. 고밀도 도시화로 스마트 그린 시티를 꿈꾸는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사우디가 건설중인 네옴시티이다. 네옴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이 추진하는 미래형 도시로서, 도시 전체를 친환경 에너지만 사용하고, 친환경 에너지로 움직이는 대중교통이 도시 전체의 교통을 책임지는 스마트 시티로 조성될 예정이다. 

* 이 글의 포인트는 기후위기에 대한 것이므로 네옴시티 자체에 대한 소개는 관련 글로 대체한다.
>> 사우디의 문명 혁명, 더 라인, 네옴 NEOM..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사우디의 문명 혁명, 더 라인, 네옴 NEOM 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직 도시 더 라인 THE LINE - 네옴 NEOM 프로젝트는? 네옴 프로젝트는 사우...

blog.naver.com

 

... 특히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더 라인"은 정말로 저게 될까 싶을 정도로 웅장한 계획이다. 사막 한 가운데 도시 전체를 하나의 빌딩으로 세우겠다는 발상은, 처음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하고 있다. (이미 공사 들어간 것을 구글 위성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이거 완공 '목표'가 2023년 기준으로 고작 8년 남았다. 빈 살만 왕자는 지금 엄청나게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누구나 이 도시에서 살고 싶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라고 썼었지만 2024년 4월 현재 나온 뉴스로는 원래 계획보다 대폭 축소하여 진행한다고 한다. -_- 링크

'더 라인' 상상도
홍해 바다에서부터 사우디 내륙 산악지방까지 이어지는 단독 건물이 곧 도시가 된다는, 골때리는 기획.

 

네옴시티가 정말로 성공하여 좋은 선례가 되면 진심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궁금하고 기대가 크다. 하지만 듣다 보면 이것은 21세기 인류가 세우는 또 다른 바벨탑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사우디는 이것이 미래 생존의 대안 모델이라고 말한다. 이것 말고 기후 재난 앞에서 다른 대안이 또 얼마나 있냐는 거다. 만약에 세상의 주요 도시들이 다들 이런 식으로 바뀔 수 있다면 기후 위기 대응에 큰 역할을 할 것은 맞다. 15분 도시, 넷제로 도시 등의 이상을 21세기 방식으로 구현한 케이스니까 말이다. 안전(safty) 면에서도, 기후 재난이 일상화 된 세상에서 시골에서 각자도생하는 것보다는 이런 도시에 들어가 생존하는 일은 어쩌면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엔 우리가 고민할 문제가 있다. 과연 저런 도시에, "누구나" 들어가서 살 수 있을까??

네옴시티에 들어오겠다고 입찰한 호텔들의 디자인 클라쓰 (클릭하면 사진 커집니다.)

 

3.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이 그래서 중요하다.

정책과 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바로 이런 부분이다. 네옴 시티에 전 지구인이 들어갈 수는 없고, 결국 저곳에 거처를 마련하는 일은 상위 몇 % 뿐일 것이다. 우리가 스마트 그린 시티를 구상한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그 도시에 함께 살아가는 저소득층/주거취약계층의 문제와 연결해서 고민해야 한다. 스마트 시티와 스마트하지 못한(?) 시티 사이의 지역 불균형 발전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네옴 시티 내에서도 저소득층과 주거취약계층을 소외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다. (* 참고로 이에 대해 빈 살만은 '기본소득 지급'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과거에 이미 두바이가 보여줬던 모델이기도 하다. 한국의 어떤 사람들로서는 빈 살만도 빨갱이라고 할 판이다.)

"폭풍의 맨 앞에 있는 사람들" 즉, 냉난방비 수도전기료 등이 실제로 생존의 문제인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정책조차 치명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국에 많은 나라들은 감염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자가격리를 시켰다. 하지만 저소득층을 그저 격리만 시키는 게 정책의 전부라면, 그들은 집에서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실제로 초기에 일부 국가에서 그런 비극적인 사례가 발생함)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더라도, 도시 건설이 끝난 뒤에 본래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 수 없는 정책이라면 소용이 없다.

건물의 소유권도 관건이다. 재개발만 해도 기존 거주자 중에서 세입자들은 그 지역을 떠나야 했던 것이 현실이다. 하다못해 내가 사는 건물 베란다에 태양광 패널이라도 설치하고 싶어도, 그게 자기 집이 아닌 세입자라면 권한이 없다. 그렇게 부동산 자산이 없는 사람들에게 라는 멋들어진 용어가 과연 어떻게 다가갈까. 자, 이렇게 복잡하고 종합적인 문제들을 고려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영역이다. 현대 복지 국가가 국민을 공평하고 평등하게 보호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이고 말이다.

 

이미 인간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정책 결정권자들의 인식 전환 및 그런 정치인들을 뽑을 줄 아는 시민들의 의식 향상이다.
즉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달린 문제이다.

 

탄소세라는 용어가  있다. 이게 다른 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탄소배출을 감축시키는 과정에 발생되는 사회적 부담, 그 중에 내가 나눠지어야 할 부담을 "세금"이라는 용어로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탄소 내연기관 활동을 줄이기 위해서 유류세를 인상하면 그동안 기존 내연기관을 쓰던 사람들이 기름값을 더 내는 것도 일종의 탄소세라 할 수 있다. (cf. 프랑스에서 있었던 노란조끼 시위 : 다음 글에서 살짝 다뤄보겠다.) '플라스틱 일회용품 값을 왕창 받겠다', '개인 텀블러를 써야 뭘 주겠다' 이런 식의, 시장경제와는 상관 없이 의도적인 불편함을 고객들이 수용하는 것도 일종의 탄소세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상, 탄소세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싫다. 하지만 필요해서 하는 것이다. 즉, 말하자면 이것은 탄소 중립으로의 빠른 전환을 위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금융 치료"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런 걸 추진하는 정치인이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따라서 이는 정치인을 평가하는 시민의식의 성숙이 함께 따라줘야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의 수많은 선진국들은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낸다. 한국의 경우 상위 10%가 80%의 세금을 감당한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세금을 올린다는 말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걷겠다는 뜻이 된다. 세금으로 뭔가를 해결하자는 말은 부자들의 부담을 키우는 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세금은 그냥 모두 다같이 나눠서 부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쉽지만 그게 아니다. 국가적인 정책을 펼쳐서 공익을 위해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세금을 쓴다는 것은 사실 서민들은 무조건 기뻐해야 할 일인 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사회는 재난지원금이라든지 어떤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저소득층에서 더 반발한다. 상위 10%를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풀리지않는신비

기후 위기 앞에서 공익을 위해 과감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시민의식이 빠르게 성장할 필요가 있다. 세금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탈탄소, 넷제로 정책을 과감하게 지원하며, 그런 정치를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결단력 있는 정치인들을 일선에 더 많이 내보내고, 그런 마인드가 없는 정치인들을 내려오게 만드는 일들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

 

4. 좌초자산과 정의로운 전환

관련하여 하나 더 다룰 내용은 좌초자산에 대한 이야기이다.

좌초자산이라는 말은 어떤 새로운 산업이 생길 때 그로 인해 망하여 가치가 사라져가는 것을 설명할 때 쓰는 용어이다. 100년 전 인류의 초미의 문제는 '말똥' 문제였다. 말이 도심 교통의 주력 수단이던 시절에는 걔네들이 지나가면서 길바닥에 똥을 쌌고, 그 똥의 양이 엄청나서 그걸 치우는 것이 도시 문제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지구온난화 고민하듯이 그때는 말똥 문제를 고민했단 말이다.

지금 이걸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자동차는 똥을 안 싸니까. 그러면 지금 그 수많은 말과 마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자동차가 나왔을 때 기존 교통의 중추 세력이던 말과 마부들의 삶은 누가 책임졌을까. 바로 이것이 좌초자산과 관련된 이슈이다. 이제, 알고보니 내연기관 차량도 배기가스라는 똥(?)을 싸고 있었으며, 그게 곧 인류를 다 죽일거라는 사실을 알게된 지금, 그래서 모든 내연기관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기로 한 지금, 이제 앞으로 지난 100년을 이어온 내연기관 종사자들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미국의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다'. 자동차를 미국만 만들어 팔던 시절에 디트로이트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그 도시 자체가 죽어버렸다.

사실 미국까지 갈 것도 없이, 한국의 케이스도 있다. 쌍용차가 망했을 때 평택이라는 도시 전체가 침울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필자가 평택에서 잠시 살았기에 잘 알고 있다.. 정말이지, TV에서나 보던 온갖 사회문제가 여기저기서 하루가 멀다하고 뻥뻥 터졌었다.. 생각만 해도 PTSD로 두통이 올려고 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_-;;;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 세계 철강 생산 6위 국가이다. 철강 산업은 에너지를 엄청나게 쓴다. 오염물질도 엄청나게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수소환원 제철 기술 등의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출할 길이 막힌다. (택소노미, Re100 등은 앞의 글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더구나 이제 스코프3(Scope3)가 적용된다. 이는 국제적인 친환경/탄소배출 규약이 제조사 뿐만 아니라 납품업체 및 전체 공급망에까지 확대 적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애플이나 삼성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전자부품, 충전기 등 자질구레한 관련 상품을 공급하던 국내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마진 압박이 심각해진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내부 생산공정 등을 바꾸어야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세제 혜택 등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기존에 알아서 미리 잘 준비했어야지!"라고 나무라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조업 기반에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이 이걸 이제라도 함께 부축하고 살려야지 어쩌겠나. "그런 레거시 산업 필요 없으니 다 버리자!"라고 해버리면.. 그냥 다 같이 죽자는 것밖에 안 된다.

과거에는 그렇게 좌초산업에 속해있던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자기가 알아서 책임져야 했다면, 이제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아니, 빠른 전기차 전환을 위해서라도, 사회 전체가 그 좌초자산에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부담을 져야 한다. 그게 모두를 위해 더 좋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 "부담"이란 무엇일까. 다음 글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기로 한다.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탈탄소라는 대의 앞에서 과감하게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가 성숙해야 하며 정책과 법률 입안의 합리성이 높아져야 한다.
아울러 희생과 부담을 감수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저소득층, 소외계층, 취약계층, 좌초자산을 버리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 역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적절한 정책과 제도가 서포트해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못하면, 탄소 중립이란 구호는 그저 허망하게 공중으로 날아가버릴 부질없는 소리가 되고 말 것이다.

 

다음 글에는 탈탄소를 서포트하는 자본과 투자에 대해 다뤄보기로 한다.

다음 글 : 기후위기 해결하기(10) - 탈탄소를 돕는 자본과 투자 : 돈의 힘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