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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프로젝트/히스토리(history)

종교개혁은 뿌리를 치는 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은 뿌리를 치는 운동이었다. 한번 건들면 전체를 살피지 않고는 걷잡을 수 없는.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논쟁들은 주로 깃털만 치는 경우가 많다. 가만보면 몸통은 따로 있는데, 터치를 안 한다. 교리 논쟁도 참, 보고 있으면 답이 없다. 논쟁이 아니라 그건 그냥 '공부를 하면 될' 문제들이다. 이제 우리도 좀 더 핵심적이고 실제적이고 근본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좋다. 우리 시대 정말 중요한 것은 교회론에 있다. 웨민 총회도 교회론에서 가장 치열했고 가장 오랜 시간과 자원과 공을 들였으며 결국에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양보된 결과물에 만족해야 했던 것도 교회론이었다. 우리는 그 결과물조차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조직과 직분 등은 고사하고 당장 예배모범에 담긴 내용들조차 그 본의를 깨우.. 더보기
얼마나 쉽게 망가지는가 지식과 지혜라는 것은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수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망가질 수 있다. E.M.번즈에 따르면,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유럽은 거의 백 년 이상 농사조차 제대로 못 짓는 형편에 이르렀다. 모터 펌프도 없던 시절에 알프스에서 로마까지 상수도를 놓았던 기술자들의 후손이, 고작 논에 물을 댈 줄도 몰라서 대부분의 논밭이 천수답으로 전락한다. 심지어 호미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생산력은 곤두박질쳤다. 지식이 전수되지 않으니까, 순식간에 유럽인들은 야만의 시대를 경험하는 거다. 바로 옆에 어마어마한 건축물과 화려한 신전이 늠름히 서 있는데, 다음 세대의 지적 수준은 그것을 보며 "누가,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 감탄하고는.. 심지어 이건 인간의 작품일 수가 없다며, "불가사의"라고.. 더보기
루터와 콩나무 종교개혁은 어느 한 개인이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모인 것이다. 16세기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할 당시, 루터는 몹시 가난해서 잉크조차 살 형편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루터는 텃밭에 콩을 재배해서, 콩에서 짜낸 기름으로 친환경 잉크를 직접 제조하여 글을 쓰곤 했다. 게다가 그 텃밭은 당시 종교개혁을 열망하던 수많은 동지들의 후원 덕에 마련한 것이고, 이웃 국가에서 망명한 개혁자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가져온 다양한 품종의 콩을 대주기도 했다. 하루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온 세 사람(teukilianus, dapoienius, iquellamus)이 보통 콩보다 훨씬 큰 크기의 콩을 선물하고 갔는데, 육종학(thremmatology)에도 조예가 깊었던 루터는 처음에 이 콩을 밭에.. 더보기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 팔츠의 선제후였던 프리드리히 3세를 아시지요? 이 사람 덕분에 탄생하게 된 개혁교회의 신앙 유산은 다음 중 몇 번일까요? 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 3. 특강 소요리문답 정답은?? 네, 답을 하나만 쓰라고 했으면 1번을 골라줘야 되겠지만, 여러 개를 써도 된다면 1번과 2번을 모두 고르셔도 됩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지만, 덕분에 모함을 받아 황제에게 불려갑니다. 그는 다급히 불링거에게 자문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고, 불링거는 마침 자신이 흑사병으로 죽게될 것을 우려하여 서둘러 작성해놓고는 유언장과 함께 책상 서랍 속에 묵혀두었던 신앙고백서를 보내주게 됩니다. 그것을 받아본 프리드리히는 무척 만족하면서, 자기 동네에서 독일어와 라틴어.. 더보기
멋있는 아저씨, 파렐 파렐(Farel) 참 멋있다. 파렐이 얼마나 멋진 아저씨였나 보자. 기독교강요를 하나 덜렁~ 출판해놓고 조용한 곳에서 책이나 읽으려고 슬그머니 내빼던 칼뱅을 파렐이 강력한 협박(?)으로 제네바에 붙잡아 남게 했던 에피소드는 많이들 들어서 아실 것이다. 그런데 스트라스부르크로 쫒겨났다가 다시 복귀할 때 그 때도 파렐이 다각도로 힘을 썼다는 사실은 많이들 모르신다. "형이 가라면 가기야 하겠지만, 아~ 진짜 싫거덩!!!" 이렇게 칼뱅은 우는 소리로 편지를 쓰기도 했으니... ㅎ (제네바에서 초기에 당한 일을 생각하면 정말 싫었을 것이다!) 파렐은, 정작 자기는 다시 부르지 않는(ㅡ,.ㅡ;;) 제네바의 괘씸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찌 보면 자기 자신도 당대에 "쫌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참 어린 후배 목.. 더보기
사본학 특강 이 강의안은 2008년 3월 새생명교회 청년부 특강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내용은 거의 전적으로 총신 신현우 교수님의 책 "사본학 이야기"를 발췌/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강의는 사해사본 전시회 관람과 함께 했으며, 박물관 앞 주차장에 앉아서 했습니다. ㅎㅎㅎ 1. 인트로: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공격들 어쩌고 저쩌고…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생략. 2. 강의를 위한 몇 가지 기본 정보 - 교회의 중요한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는 것 -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 성경의 기록자들은 사람이지만, 그들의 기록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 기계적으로 받아적거나, 반대로 저자가 창작한 것이 아니다. - 성경의 원문은 오래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 더보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뻔한 오해들과 그 오해 풀기 17세기가 얼마나 멋진 시절이었는가에 대해, 저는 평소 가까운 친구들에게 열변을 토하곤 합니다. 그만큼 그 시절의 매력에 빠진 탓인데요, 최근에는 17세기 관한 교계의 관심이 부쩍 늘면서, 특히 특강 종교개혁사 출간 이후로는 감사하게도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한 논의가 더러 생기면서, 그에 따라 '으레 회자되곤 하는 오해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오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라면 무려 350년 전인데, 먹고 살기도 바쁘던 환경 속에서 무슨 제대로 된 토의라도 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그 때는 전쟁통이지 않았나?? 우리는 훨씬 더 좋은 환경에 있으므로, 충분히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오늘날의 신학은 발전되어서, 웨스트민스터 당시보다 훨.. 더보기
가하시면 예 하시고 (페북에 썼던 글) 교회에서 공동의회나 제직회 등의 회의를 할 때 보면 가하시면 예 하시고, 부하시면 아니오 하시오. 뭐 이런 식으로 보통 진행을 하는데, 젊은 사람들 보기엔 다소 어색한 방식입니다. 거기서 "아니오" 하기도 좀 그렇고요 ㅋㅋㅋㅋ 하지만 이것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식이며 사실상 무척 명확하고도 신속한 의사결정 방식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 때도 그 수많은 안건 처리를 위해 (때로는 요리문답 문항 하나를 두고 며칠씩 회의를 했으니...) 효율적인 회의 진행과 시간절약을 위해 이 방식을 썼습니다. 즉, 서기가 앞에 나와서 어떤 논제를 읽어주고 이어서 찬반 양자의 근거(주로 성경)를 읽어주면 의장이 그 논제에 대해 전체에게 가부를 묻습니다. 동의하면 "aye"라 하고, 아니면 "No"라고 말하도록 하여 더 .. 더보기
누가 에딘버러 성을 무너뜨렸지? 2014년에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가 있었다. 결과는 부결됐으나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었단 생각이 든다. 국내 H모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면서 2014년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베녹번 전투" 600주년이라고 하던데, 실제로는 700주년이다. 어쨌든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를 철저히 이겼던 그 전투를 기념해서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베독번 전투 700주년이 되는 2014년에 스코틀랜드 독립투표를 하겠다고 했고,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점은 생각할 수록 대단하다. 그런데 베녹번 전투와 상관이 전혀 없지 않은 또 다른 전투 하나가 바로 그 해에, 즉 700년 전에 에딘버러에서 있었다. 난공불락의 천혜의 요새였던 에딘버러 성을 스코틀랜드 군은 오랜 시간 함락시키지 못했는데, 당시 에딘버러를 차지하고 있던 잉글랜.. 더보기
장로교회, 합의, 회의체 해마다 총회 때가 되면, 장로교회 교인으로서 보고 듣기에 괴로운 부끄러운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물론 감리교회쪽에서 들려오는 소식도 쑈킹하기 그지 없지만, 내가 속한 교회의 소식에 더욱 놀라고 가슴아픈 것은 인지상정이다. 올해는 좀 나은가 싶은데, 그것은 총회의 형편이 나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내가, 우리가, 무감각해진 탓이다. 상황은 여전하시다. 왜 장로교회는 그토록 엉망일까? 이상적이라는 제도가 왜 그렇게 추한 모습을 대내외로 허용하는 것일까? 법을 몰라서일까? 타락한 자들만 골라서 총대가 되는 것일까? 옆에서 지켜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귀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법을 아는 분들도 널려 있다. 그런데 왜, 왜 그럴까? 아주 쉽게 말해서, 장로교회 제도의 근간은 기본적으로 "겸손.. 더보기
칼뱅, 파렐, 틸레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에게 최근 일어난 일은 주님께서 무엇을 행하라고 하시는 것보다 세상의 질서에만 맞추려고 하는 악독한 자들이 일으킨 것 같네. 하지만 내가 부탁하는 것은 스스로의 입장에서 자네의 교회 운영방식에 비난받을 만한 것이 혹시 있는지 숙고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네. 자네가 주님의 눈앞에서 겸손해지는 방식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그리하여 주님이 정하신 자들의 구원을 돕고, 그러한 구원이 점점 더 늘어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자네에게 풍성한 은혜와 재능을 주신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나." 배경지식 없이 이 편지글을 읽은 사람은, 어느 경건한 신앙의 선배가 미성숙한 사역으로 교회에 어려움을 초래한 후배 사역자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하는 것처럼 여길 것이.. 더보기
웨스트민스터 총회 그림 해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모습입니다. 많이들 접해보신 그림이지만, 제 나름의 작품해설을 해보겠습니다. 재미로 보시기 바랍니다. ^^ 이 그림은 워낙 현장감이 있어서, 마치 기념사진처럼 당시 누군가가 기록용으로 그린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19세기에 특정 세력에 의해 특정 목적을 위하여 (양심의 자유라는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화가에게 위탁하여 그린 것입니다. 따라서 정확하게는 '상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 없던 인물도 '의도적으로' 그려넣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화면구성이라든지 디테일한 묘사 속에서 작가의 기발한 재치와 숨은 의도를 발견하며, 큰 재미를 느꼈습니다. 영국의 종교개혁 배경과 청교도혁명, 그 결과로 이루어진 크롬웰의 통치 10년과 그 후 왕정복고에 대한 지식이 좀 있는 분은 더.. 더보기
다 빈치 코드와 니케아 신조 영화 "다 빈치 코드"에는 주인공 커플이 현금수송차를 탈취(?)한 뒤 빌레트 성으로 티빙 교수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관객은 티빙 교수의 나레이션을 통해 "뜻밖의 교회사 특강"을 듣게 되는데, 물론 아주 씨니컬한 내용이다. 특히 니케아 공회에 대한 설명 중에는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니케아 공회'의 현장 상황이 중계(?)되는데, 상상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대단히 경멸스럽게 그려진다. 사실 이것이 일반적인 현대인들이 공회의를 바라보는 시각일테다. 수많은 교파의 종교지도자들이 시장 바닥같은 성당에 모여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각자가 생각하는 교리를 주장하고, 그 사람들이 모여서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로 주요 교리들을 (무려) "투표"로 결정하는 장면이 흘러간다. 복음서 종류와 부활절 날짜와 각종 의식.. 더보기
존 녹스와 앤드류 멜빌 존 녹스는 장로교회주의자가 아니고, 멜빌에 와서야 (그리고 오직 멜빌만이) 장로교회주의자이다, 이렇게 보는 시각이 더러 있습니다. 이렇게 둘을 분리하려는 시각은 아주 엉뚱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고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 초기에 주교제가 남아있었고, 이것이 또한 존 녹스의 허락 내지는 적극적인 협의의 결과라는 사실 때문에 그렇게 보는 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부분을 크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종교개혁의 진행적인 측면에서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 자르듯이 쉽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잉글랜드의 그린달 대주교라든지, 심지어 화이트기프트 역시, 비록 국교회의 수장으로.. 더보기
[정보나눔] 웨스트민스터 총회 관련 자료들 웨민 총회가 실제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요즘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반 딕스훈의 작업일 것입니다. 그는 과거에 나온 웨민 회의록을 재편집해서 유실분을 복원하는 작업까지 시도했고, 책으로 묶어 냈습니다. . 5권 1세트로, 1권은 배경설명, 2~4권은 회의록 자체, 5권은 그밖의 관련 문서들입니다. 아마존 리뷰 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적혀 있습니다. "A vast masterpiece of scholarly editing-- Ushers in new era of Study of Westminster Assembly". 백퍼 동감합니다. 만약 이 책이 너무 비싸서 구매가 힘든 분은(저 역시 도서관에서 장기대출로 해결) 아쉽더라도 아래 문서를 .. 더보기
1559년이 얼마나 신기한 해인가 종교개혁사에 있어서 1559년이 얼마나 신기한 해냐면... - 칼뱅이 기독교강요 최종판 완성한 해 - 베자와 함께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운 해 - 프랑스 개혁교회의 갈리아 신조 채택의 해 - 존녹스가 스코틀랜드에서 종교개혁 시작한 해 - 스페인 필립2세가 네덜란드에 주교좌 구축하며 종교개혁 탄압 시작한 해 - 엘리자베스1세가 수장령과 통일령을 발표한 해 -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하이델베르크)의 통치가 시작된 해 이게 모두 1559년에 일어난 사건들 !!! 더보기
총회의 위기 옛날 옛적에 이런 일이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어느 날, "총회의 위기"라고 불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총회는 에 대한 수많은 토론 끝에, 참석자들의 합의된 입장을 어느 정도 정리한 상태였고, 이것을 문서로 만들어서 의회에 보고했다. 잉글랜드 의회는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회는 기본적으로 권징의 권한을, 의회의 지시를 받는 공권력의 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총회의 결론은 그것이 교회(장로회:당회)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식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의회는 발끈했다. 당시 의회의 수많은 분과 중의 하나에 불과한 "종교 위원회"였던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감히" 의회의 권위에 토를 달았다고 생각한 의회는, 총회의 몇몇 총대들에게 일종의 경위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더 나아.. 더보기
교회 총회와 세속 권력 도르트 총회, 웨스트민스터 총회 등 교회회의에 정치권력이 영향을 끼쳤으므로 순수성을 잃었다고 보는 사관은, 당시의 국가교회를 오해한 것이다. 그렇게 치면 세속의 영향권 밖에 있었던 교회회의가 한 번이라도 존재했던가? 역사 속 모든 교회회의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당시 세속 권력의 압박과 오염 시도는 당연히 있었고, 교회가 그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았느냐를 차분히 판단할 문제이지, 넘겨짚어 부정함은 옳지 않다.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의 투쟁이라는 아주 오래 된 기본 구조 및 그 한계를 이해하고, 그 형편 속에서 종교개혁자들이 교회회의를 추진했을 때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수립하고 견지했던가, 그 원리를 찾고자 노력함이 유익되겠다. 더보기
노회정치 포기하지 말자 장로교회의 핵심은 무엇일까? 교리는 개혁파 정신을 따르면서, 교회정치에 있어서는 노회정치를 따르는 것이 핵심이다. 나는 장로교회 정치를 교회사 가운데 출현한 가장 성경적인 교회론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동시에, 교회의 연약함을 가장 잘 이해한 교회정치라고 본다. 바른 신학이 노회정치로 표현된다. 어느 한 개교회만으로 완전할 수 없다. 노회를 배제하고 독자적인 개혁교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건 뜻은 가상하나, 그 앞날이 밝지는 않다. 어쩔 수 없이 경직되고, 편협해진다. 열려있어야 하고, 함께 자라가야 한다. 노회정치, 현재의 모습만 보면 답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자. 더보기
History of Westminster Assembly - William M. Hetherington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연구하려면 아니 볼 수 없는 책이 바로 헤더링턴의 책입니다. 이 책의 개요 부분만 따로 번역해서 제공합니다. 전달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은 의역을 조금 했습니다. 괄호 안의 내용은 제가 첨가한 주석입니다. - 황희상(흑곰북스) / 번역 협력 : 김준환(합신), 이요한(총신) 1장 서문 15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중요성 17 헨리 8세와 교황 사이의 언쟁 18 크랜머의 제안 1531 19 교회의 수장이라 불린 헨리 20, 21 이렇게 상정된 권력의 영향들 22 종교적 합의의 여섯가지 조항 24 에드워드 6세에 의해 촉진된 종교개혁 25 예배 & 성직 서임 정책 (교회정치에 관한 포고문) 1550 ib. 후퍼가 주교의 복식을 거부하다 (복식논쟁) 26 종교의 조항들 27 "피의 메리"와 박해.. 더보기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의심하라!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대해 생각할 때 질문 자체를 하지 않았었죠. 그냥 그런 게 있나부다 했고... 질문이 없으니 제대로 대답할 필요조차 없었기에 대답을 갖고 있어야 할 분들이 준비조차 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 항상 의문을 가져야만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의문을 가집시다. 그리고 답을 찾읍시다. ▲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애초에 왜 열렸을까? ▲ 151명의 잉글랜드 성직자들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 6년 동안 회의만 하다니, 미친 거 아냐? ▲ 회의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절차로 이루어졌을까? 친한 사람끼리 모여서 뚝딱 만들어놓고,우리보고 믿으라는 거 아닐까? ▲ (런던 여행 때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직접 가보고 나서.. 더보기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의 작성 과정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었는지, 총회에 사용된 재정을 통해 상상해본 글을 페북에 올린 적이 있고, 그것을 각색하여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에도 부록처럼 넣었다. 오늘은 의 작성 과정이 어떠했는지 적어본다. 교리문답 작성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혹자가 상상하듯이, 그저 기존에 있던 교리문답 몇 개를 탁상머리에 모여앉아 짜깁기로 해치운 것이 아니다. 우선, 전체 총회의 후반기에 해당하는 기간에 교리문답 위원회가 구성되다 보니, 이미 거의 완성단계에 있었던 "신앙고백서"와 신학적 표현을 일치시키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기존에 있던 교리문답을 조금 수정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교리문답 작성 위원들은, 위원장을 맡았던 팔머의 교리문답을 기본 베이스로 하면 될거라 생각했겠으나, 실제로는 새로 만.. 더보기
[1362 vs 1163] 웨스트민스터 총회 기간 웨스트민스터 총회 기간을 말할 때 보통 1643년부터 1649년까지 6년간이라고들 말합니다. 이 숫자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오십니까? 이걸 조금 더 정확히 해보면, 실제로 총회 회의록에 기록된 공식 세션은 1643년 7월 1일부터 1649년 2월 22일까지로 5년 7개월 하고도 22일입니다. (실제로는 그 뒤로 1년간 더 지속됩니다.) 이걸 개월 수로 하면 67개월 하고도 22일이 되고요, 이 기간 중 토요일과 주일을 제하고 "근무일수"만 뽑으면 대략 1362일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저는 이 계산 결과를 보는 순간 오싹-했습니다. 저 1362라는 숫자 앞에서 숙연해졌습니다. 왠줄 아세요? 웨민 총회 기간 중 공식적으로 1163번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1163회라고 하면, 느낌이 뭐 그냥 그렇죠? 하지.. 더보기
[자료] 특강 종교개혁사 추천도서 목록 A. 영어서적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실제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 중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Chad Van Dixhoorn의 작업입니다. 그는 과거에 나온 웨스트민스터 회의록을 재편집하면서 유실분을 복원하는 작업까지를 시도했고, 놀랍게도 그걸 성공해서 책으로 묶어 냈습니다. 이 책은 5권 1세트로, 1권은 배경설명, 2~4권은 회의록 자체, 5권은 그 밖의 관련 문서들이 담겨있습니다. 아마존 리뷰 중에는 이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A vast masterpiece of scholarly editing - Ushers in new era of Study of Westminster Assembly". 책값이 비싸지만, 도서관을 통해서라도 접해보시기 바랍니다. W.M. Hetherington..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