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트래블 메이커/2018 미국 서부 - 봄 | 가을

[미국] LA - 똘레랑스 박물관(Museum of Tolerance) / 톨러런스

by 황희상 2019. 7. 2.

미국 서부 여행에서 아주 인상깊었던 박물관 베스트3을 고르라면 바로 세 곳이 떠오른다.

1. LA, 똘레랑스 박물관 (Museum of Tolerance)
2. 시애틀, 역사&산업 박물관 (MOHAI: Museum of History & Industry)
3. LA, 캘리포니아 사이언스 센터 (California Science Center)

1번은 스토리텔링의 신박함, 2번은 박물관이 관람객과 소통하는 능력, 3번은 물량과 다채로움 그 자체로 너무나 대단한 곳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 방문한 똘레랑스(톨러런스) 박물관은 말 그대로 우리 부부의 박을 터버렸던 아주 놀라운 곳이다. 나는 이곳을 구글맵을 디비다가 발견한 것인데, 큰 기대 없이 갔다가 탄광에서 보석을 캔 기분이었다.

아참, 똘레랑스는 프랑스 말인데, 번역하기 쉽지 않지만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그리고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나는 이 개념을 대학 1학년 때, 그 해 출간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에서 맨 처음 접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경험적이고 체휼적으로 알지 못하다가, 이런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알고 1초의 고민도 없이 일정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이곳은 입장할 때 주차장에서 차량 트렁크까지 조사할 정도로 경계가 삼엄(?)했다. 그만큼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는 곳이다.
아임 낫 어 테러리스트;;;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잠깐 기둘리라고 하더니, 한국어를 하는 직원(인턴)을 불러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앳된 한국인 학생이 한 분 나온다. 여기서 일한지 4달째 됐는데, 한국인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자기가 대신 가이드투어를 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방해하기 싫어서 전시 구성만 대충 알려주면 우리끼리 알아서 다니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전체적으로 박물관을 어떻게 보면 되는지 앞부분을 시범적으로 안내해주면서 친절하게 소개해주셨다. 

전시관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뉘는데 한 곳은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마주하는 사안들에 대한 관용의 문제를 다루고, 또 다른 곳은 나찌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총 7개의 세부 전시실로 구성된 일반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입장을 하면 이렇게 두 개의 문이 있다. 당신은 편견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편견이 없다고 하면서 그쪽 문을 열려고 하면....? #스포일러ㅋㅋ
전체적으로 어두운 박물관 내부는 그저 전시물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한 공간에 하나의 강렬한 오브젝트만 마련되어 있었다.

미국처럼 인종과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사회에는 이런 박물관과 그 박물관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말 정말 절실히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대한민국의 그 수많은 편견들, 특히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 절대적인 편견들에 신물이 난 상태에서 뭔가 좀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함이었는데, 정말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곳을 널리 소개해야 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조차 생길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이 전시관이었다. 이곳은 관람객을 마치 어느 까페에 앉아있는 것처럼 만드는 상황극 속으로 초대해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게 하고, 거기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겠는가를 투표  시스템을 통해 응답하게 한다. 그러면 리얼타임으로 그 투표 결과가 모니터에 제시되면서, 같은 상황을 놓고 사람들이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틀린 것"이 아닌지를, 주저리 주저리 설명하지 않아도 깨닫게 만든다.. 이건 설명만으로는 어떻게 전달이 안 된다. 정말, 직접 해보면 이게  왜 탁월한 방식인지, 느낄 수 있다. 

"존중하라,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라!"

 

이어서 우리가 간 곳은 홀로코스트 쪽 전시관이었다. 여기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사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안네의 집"에도 직접 가봤던 사람들이라서, 미국에서 만든 홀로코스트 전시관이라 해봐야 뭐 별게 있겠나 하는 생각으로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그 인턴 학생이, 이곳은 꼭 보시라고 당부한 것도 있고.. 그냥 나가기도 아까워서 들어가봤는데... 여길 빠뜨렸으면 일생일대의 실수가 될 뻔했다.

시작하면서 카드를 한 장 손에 쥔다. 그리고 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면서 기계에 카드를 넣으면 그 사람의 신상정보가 뜬다. 어디서 태어난 누구인지... 음, 홀로코스트 피해자를 이렇게 기억하자는 말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 우리는 이 기계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데..... #우선 여기까지.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관람객은 먼저 입장한 팀이 관람을 중간쯤 했을 때 쯤 입장이 가능하다. 전시실은 하나의 거대한 연극 무대처럼 되어 있다. 그 연극 속으로 한 무리의 관람객이 지나가면, 준비된 메시지가 제공되는 방식이다. 그 과정이 물 흐르듯 진행되어 마치 내가 그 현장으로 빨려드는 듯하다.

 

홀로코스트는 그냥 히틀러라는 미친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렇게 무슨 아노미처럼 된 일이 아니라, 당시에 복합적으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보는 것처럼 알려준다. 당시 독일인이 봉착했던 문제와, 그것을 풀어나가는 정치꾼들의 미숙함과, 부화뇌동했던 미디어와, 제한 받지 않은 프로파간다의 부작용과, 종교 지도자들의 비겁한 침묵과, 무책임한 대중의 동조... 이 모든 것이 히틀러를 만들었고, 그렇게 모두가 히틀러가 되었다.

이 복잡한 내용을 그냥 그 시절 그 현장에서 골목길을 걸으면서 경험하듯이 체험하게 해주는 고퀄 전시기획에 솔직히 너무 놀랐고, 그간 내가 받아온 교육들과 비교되면서 의기소침 되고.. 기분이 나쁠 지경이었다.

가스실까지 들어간다....... ㅠㅠ
밖으로 나와서 카드를 넣었더니, 앞의 그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자세한 정보가 출력되어 나오고, 가져갈 수 있도록 해두었다..

전시실 마지막에는 어떤 사람의 서재가 보인다. 누구의 방인가 살펴보니, 이런 모든 일들을 마치 없었던 일처럼 묻어버리려는 움직임에 대항하여 모든 실상을 추적하고, 죽을 때까지 나치와 부역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애썼던 사람의 실제 서재라고 한다. 과거를 그저 과거의 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과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이렇게 끊임없이 누군가는 애써야 한다는 것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있다. 일제의 만행과 위안부 문제, 5.18과 세월호 문제 앞에서 "그냥 덮자"고 말하는 사람들. 그분들에게, 이곳 똘레랑스 박물관 방문을 적극 추천한다. 꼭 그들이 아니더라도, 이 글을 보는 모든 한국인, 특별히 LA에 거주하거나 LA를 여행하는 모든 분들은 이 멋진 박물관을 꼭 방문하시면 좋겠다. 할리우드 거리에서 츄바카와 기념사진을 찍는 것보다 훨씬 훨씬 유익한 일이 될 것이라고 이 연사 자신있게 외치는 바이다...!

 

"Hope Lives When People Remember."

홀로코스트 체험관 가스실 벽에 적힌 문구였다.

 

 

다른 박물관 미리 보기
2. https://joyance.tistory.com/214 캘리포니아 과학박물관
3. https://joyance.tistory.com/229 시애틀 역사산업박물관

댓글